설교
세상에서 성도가 사는 법(1)
성도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벧후 1:1-4절
250202주일낮설교
예능프로그램에 있어서 주로 벌칙을 주는 순서에서 가짜와 진짜를 구별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커피와 까나리액젓이 든 컵을 놓고 커피를 마시게 한다든지 사이다와 소금물이나 토마토 쥬스나 켑사이신이 든 토마토 쥬스를 놓고 선택해서 마시게 하는 것이다. 마시기 역겹고 어려운 음료를 선택해서 한 모금 마시면서 아닌 척 하지만 이내 뱉어 버리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재미를 느낀다. 매운 켑사이신이 들어있는 토마토 쥬스를 마시고는 아닌 것처럼 여유로운 표정을 짓다가 못 견디고 뱉어내면서 물을 찾아 입을 헹군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만 진짜와 가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는 진짜와 가짜가 존재한다.
우리 신앙세계에도 역시 진짜와 가짜가 존재한다. 진짜와 가짜의 차이는 성경이 아니라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단인 여호와의 증인들은 워치타워 성서협회에서 만든 자기들의 성경이 있어서 우리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몰몬 교도 몰몬 경이라는 자기들의 성경이 따로 있다.
그러나 신천지 같은 데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과 같은 성경을 쓰고 있다. 그런데 그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이단이 된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하는 틀이 조직신학이라고 하는 교리를 말한다.
성경의 틀을 잡아주는 교리는 딱딱하고 내용이나 단어가 어렵다. 그래서 회피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주일학교부터 그 수준에 맞추어 교육하는 교리교육이 있어야 한다. 다른 교단이나 이단들의 교리에 대해서 알기 이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바른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것에 대해서 분명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것과 틀린 것에 대해서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부터 베드로후서를 강해하고자 한다. 베드로후서는 전서와 마찬가지로 사도 베드로가 아시아 전역에 흩어져 있던 성도들에게 편지했다. 베드로는 주후 68년에 순교했기에 이 편지는 주후 64년에서 68년 이전에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베드로전서는 외부로부터의 각종 핍박에 처해있던 성도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 썼다. 그런데 베드로 후서는 교회의 내적 고난 다시 말하면 거짓교사와 거짓 교리로 인한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쓴 편지라고 볼 수 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이 땅을 살아가면서 세상의 썩어질 것들에 대하여 유혹을 받으며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본성을 따라 구별되어진 성도로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거짓이 난무하고 있는 세상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가짜신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며 우리의 믿음의 정체성을 바로 인식하여 세상 속에서 구별된 성도로 온전한 모습을 이루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1. 우리는 믿음으로 가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본문 1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본서의 기록자는 사도 베드로라고 밝히고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으로 부터 부름 받은 제자였고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1군에 속한 제자그룹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부름 받아 제자가 된 사람들에 대해서 부러워하고 있다. 그들은 대단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와는 어딘가 모르게 다른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그들과 비교되는 우리 자신들을 보면서 초라하고 연약한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자신에 대해서 자학하는 수준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아의식을 자존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세상 속의 자신에 대해서는 자존감을 갖는다는 것이 개인적인 문제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학력이나 외모나 재산에 대해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런 것을 무시하고 당당하게 살라고 하기 에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에 치우치지 않고 자기의 가진 장점을 인식하며 기죽지 말고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세상 적이고 외적인 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내적 자신감이다. 그런데 우리의 내적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가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믿음의 확신이다. 믿음으로 변화된 우리의 신분과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적인 것들을 극복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게 되고 다른 사람의 것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다. 독수리 새끼가 처음에 오리새끼들과 어울려 살다보면 오리 새끼들에 의해서 많은 괴롭힘을 받을 수 있다. 저 아이는 우리와 같지 않아. 저렇게 못생긴 아이와 놀지 말자고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지 못하면 나는 왜 저 아이들처럼 헤엄도 못치고 이상하게 생겼을까하고 자신에 대해서 주눅들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미 독수리가 왔을 때 모든 오리들은 다 도망갔지만 새끼 독수리는 전혀 무섭지 않고 오히려 친근감이 들었고 결국 자기가 독수리 새끼인 것을 알았을 때 다른 오리 새끼들을 두려워하거나 비교하면서 주눅 들어 지내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지내며 새끼 오리 들이 뭐라고 해도 가볍게 넘길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록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의 어떤 사람들이나 환난이나 핍박이 주어져도 능히 이겨 낼 수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위축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조금 나은 것 같으면 스스로 실족하거나 시험에 빠지기도 한다. 자존감이 낮으면 자존심만 내세우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스스로 상처받으며 다투기도 한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본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도된 자들과 동일한 믿음을 가진 존귀한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쓸모없고 별 볼일 없는 존재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주님이 보시기에는 믿음에 있어서 베드로와 같은 사도의 반열에 세워진 사람과 동등한 귀한 존재가 된 줄 믿기 바란다.
스스로 생각 하듯이 별 볼일 없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별처럼 빛나는 귀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바란다. 사탄은 내 자신의 모습을 초라하게 인식하게 만들어 별 볼일 없는 자인 것처럼 인식하게 할 때에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지 말고 나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친 백성 되었다고 당당하게 외치며 자긍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성도로서의 자긍심만 갖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성품을 소유해야 한다.
본문 4절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본문에서는 우리에게 큰 약속을 주었다고 했는데 이 약속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약속이다.
벧후3:12-13절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주의 재림에 대한 약속은 성경 말씀을 통해 분명히 예언되고 있는데 이 날에 또한 우리에게 새로운 새 하늘과 새 땅인 신천지가 도래할 것이다. 우리 구원 얻은 성도들은 비록 험난한 이 땅에서 신앙생활 하지만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주님은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실 것임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흔들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른 것에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이 약속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줄로 믿는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이런 약속을 주신 것이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성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주신 것이라고 말씀한다.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굳건한 약속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썩어질 세상의 것들에 취해 흔들거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본성에 합당한 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히브리서에서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이 땅을 영원한 거주지로 여기지 않고 지나가는 나그네요 외국인과 같은 심정으로 살았다.
비록 성도가 되었다해도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의 방식은 세상의 법칙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법칙은 내가 잘되어야 하고 출세해야 하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취해지는 어떤 죄를 지어도 다 합법화 될 수 있고 묵인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잘되고 출세하면 내가 행한 모든 방법이 불의를 행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합법화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세상이다.
과연 꿩 잡는 게 매이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가 하는 것이다. 세상과 교회를 이분화 시켜놓고 세상에서는 세상의 방식대로 열심히 살고 주일에 교회 와서 한 시간 예배 참석하면서 모범적인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교회와 세상을 철저하게 이분법화 시키지 말고 하나로 인식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집사면 교회 밖 세상에서도 집사로서의 신앙과 품위를 지켜야 한다.
신앙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가던 사울이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게 된다. 사울의 구원으로의 회심은 사울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울은 자기의 사명을 깨닫고 유대교를 중심했던 삶에서 정 반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길은 수월하지 않았다. 외적으로 주어지는 핍박이나 고난이 문제였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내적으로 심적인 고통이 있었다. 자기는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된 자로서 그에 합당한 의를 행하는 삶을 살기를 원했지만 늘 나타나는 현실적인 모습은 자신의 악을 행하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자신을 안타깝게 여기며 탄식했다.
우리 역시 기도하면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사죄의 은총을 구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어떤 죄를 범하고 있으며 지은 그 죄에 대하여 진정으로 회개하며 돌이켜 다시는 그러한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힘써야 한다. 이렇게 변화를 추구하는 삶을 행하지 않고 적당하게 하루 하 루를 살아가는 것은 본성에 눌려 죄에서 빠져 나오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죽음에서 영생으로 옮겨졌다는 것이 복된 인생으로 전환되었음을 말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할 수 있는 분명한 약속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 세속에 치우쳐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행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을 따라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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