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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성도가 사는 법(7) 변하는 세상 불변하는 말씀
2025-03-22 08:58:50
사무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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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성도가 사는 법(7)

변하는 세상 불변하는 말씀

벧후 1:12-18

250316주일낮설교

중세의 위대한 신학자 어거스틴은 시간이 과거에서 시작돼 현재를 거쳐 미래를 향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서부터 달려와서 현재를 지나 과거로 흘러간다고 했다. 과거는 지나가서 존재하지 않고 미래도 아직 오지 않았기에 없는 시간이고 현재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현재도 우리가 말하는 순간 지나가기에 현재라는 시간은 매우 짧으며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며 설교하고 있지만 설교 시작한지 벌써 시간이 지났다. 설교하고 있는 현재라는 시간은 너무 짧아서 한 순간의 점을 찍고 계속해서 과거로 빨려가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다 지나간다.

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의 옛 동산에 올라 라는 가곡이 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전에는 교과서에 실렸던 곡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불리던 곡이다.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보니 산천의구 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예 섯던 그 큰 소나무 버혀지구 없구려. 산천의구라는 말은 산천은 옛날과 같은데 라는 말이지만 이 말도 헛된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여름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산이 무너지고 또한 개발로 인하여 지형도 변하고 있다. 이번 겨울에 습설로 인하여 부러지고 큰 소나무의 가지들이 찢겨나간 안타까운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모든 만물이 다 변하고 우리 인생도 덧없이 지나가는 세월 앞에 당할 장수가 없다. 모든 것들이 다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40:8 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성경은 기록된 지 단 한 번의 개정판도 나오지 않고 있다. 물론 한글 성경이 전에는 개역 성경이었고 지금은 개역 개정판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은 원문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시대에 따라서 현대적인 표현으로 그리고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느라고 개정 된 것이지 내용의 변화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근거를 변함없는 성경말씀에 둘 때 우리의 신앙은 영원한 것이다. 신앙생활의 근거도 변화무쌍한 사람의 생각이나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는 안 되고 불변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두어야 한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사람의 말이나 경험은 다 변하고 사람의 기억 속에서 잊혀 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영원하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라고 권면하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1. 인생은 지나가지만 말씀은 영원하다.

 

본문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우리 교회는 장로교 합동 측에 속해 있다. 우리 교회는 장로교이기에 칼빈주의를 따르고 있다. 칼빈주의 란 칼빈의 사상과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이다. 그러면 칼빈의 사상은 어디에서 왔는가하면 초대교부인 어거스틴의 사상에서 왔다. 어거스틴의 사상의 근거는 어디에서 왔는가하면 사도들에게서 왔다.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교회는 사도들과 신약의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통하여 기초를 세웠다. 사도는 예수님의 12제자를 말하는 것이고 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전하는 직분의 사람을 말한다. 사도와 신약의 선지자직분은 초대교회는 존재했었지만 그 뒤로 사라졌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직분이다. 교회의 기초가 되는 가르침은 사도와 선지자라고 하지만 교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2:20절 하반 절에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돌이 되셨다고 한다. 여기서 모퉁이 돌이란 건물의 기둥을 받치고 있는 기초 석을 말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초는 사람의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는 줄 믿기 바란다. 교회가 영원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인간의 기초위에 세워져서는 안 되고 그 기초는 반드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고 가르침을 바로 옆에서 듣고 보았다. 예수님에 대해서 누구보다 더 잘았던 사람이지만 당시의 성도들과 계속해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주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없었다. 하나님께로 떠날 기약이 가까워 온 것을 인지한 베드로는 남아있는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그 말씀을 따라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말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신앙생활 할 것을 권하는 것이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것임을 알았기에 본문에서 그것을 강조하고 있다.

본문 12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베드로가 감당해야 할 사명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베드로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주님께서 맡겨 주신 형제들을 굳게 하라고 하신 사명에 순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기를 잊지 말고 계속 기억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해서 신앙생활을 하라고 권하고 있다.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잊혀지는것이 두렵다고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변하고 우리의 기억도 유한적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기는 잊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그들에게 머물기를 원했다. 그래서 12절과 13절 그리고 15절에 계속해서 생각나게 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13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베드로는 자기가 살아있을 동안에 그의 서신을 읽는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그들의 가슴에 새기기를 간절히 원했다.

우리의 기억력은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서 점점 약해져 간다. 그렇다고 포기하거나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른 것들에 대한 기억은 점점 사라진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생각나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어린 자녀 손들을 인간의 말로 훈계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교육은 말로 시키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본을 통하여 행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자녀 손들에게 많은 말을 하기 보다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모습과 부모가 늘 성경을 읽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은 자녀들의 마음 깊숙이 각인될 것이고 나중에라도 생각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자녀 손들이 신앙에서 떠났다 해도 나중에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줄 믿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들도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고 생각나도록 늘 깨어 말씀을 가까이하는 삶을 살아 갈수 있기를 바란다.

 

2. 인간의 경험도 유한하지만 말씀은 영원하다.

 

본문 17-18 지극히 큰 영광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마태 마가 누가복음서에서는 공히 예수님의 변화 산 사건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

17:1절 이하에 보면 이 사건이 기록되어 있고 거기에 보면 마가와 누가복음의 병행 구절이 나오고 있다.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최측근에서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놀라운 것들을 경험 했다. 눈으로만 목격한 것이 아니라 직접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음성도 들었다.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다. 베드로는 놀라운 경험을 했고 결국 이러한 경험은 예수님에 대해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하므로 예수님의 칭찬을 받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 앞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편지를 하면서 자기가 친히 목격한 사실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다. 베드로는 친히 경험했고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하고 있지만 놀라운 사실에 대해서 전해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믿음이 계속해서 유지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을 목격하거나 전해 들었다 해도 그것이 온전한 믿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이적을 요구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고 그들에게 놀라운 이적을 베푸셨다. 단순한 이적이 아니라 당시에는 불치병이었던 사람들을 고치셨고 심지어는 죽은 사람도 살리셨다. 그래서 한 때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지만 자기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자 열렬히 따랐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다 배반하고 돌아서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폭도들로 변했다.

 

우리는 눈으로 보면 확실히 믿겠다고 생각한다. 이적을 목격했을 때 마음이 열릴지라도 온전한 믿음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유대인이나 우리 민족이나 공히 현상적인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예전에 부흥회 포스터에는 꼭 등장했던 것이 병 고침의 역사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예전에 어떤 권사님의 병 고침의 역사에 대해서 한국 교회가 들썩였다. 그러나 그것도 유행처럼 지나고 나니까 썰물이 빠져나가듯이 잠잠해졌다. 고전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의 신앙의 근거는 이적 행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근거한 신앙이어야 한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사람 중심이나 경험 중심의 신앙생활에 치중되어 있다. 말씀을 잘 전하거나 능력을 행한다고 따랐던 유명인도 지나가고 이적 행함도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아련히 사라지게 된다. 영원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중심이 아니라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이루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만 만족하지 말고 듣는 정도에서 내가 스스로 읽고 묵상하는 정도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가 모이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자기가 깨달은 말씀을 가지고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란다. 컴퓨터나 핸드폰에서도 교회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지난주일 설교를 다시 한 번 읽어보기를 바란다. 들었던 말씀이지만 한주가 지나면서 다시 한 번 읽어보면 자기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은혜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조용히 묵상하고 그 깨달은 것을 다음 순모임에 참석해서 함께 나누면 서로 간에 유익이 될 줄로 믿는다.

 

사람들의 말이나 행하는 이적 같은 것은 다 지나가고 변하는 것이기에 이것을 신앙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오직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위에 우리의 신앙의 기초를 놓고 그 위에 신앙의 건물을 세우되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신앙의 건축물을 세워 나가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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