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세상에서 성도가 사는 법(5)
성도가 갖추어야 할 온전한 성품
벧후 1:7절
250302주일낮설교
어떤 사람이 마술사로부터 지우개 하나를 받았다. 마술사가 그에게 말하기를 “이 지우개로는 딱 한 가지만 빼고 어떠한 것도 다 지울 수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는 지우개를 가지고 세계의 높은 사람들의 얼굴과 말씀이 가득 실린 신문을 지워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정말 말끔히 지워졌다. 그는 신이 났다. 그림책도 지우고 사진첩도 지웠다. 시도 지우고 소설도 지웠다. 그는 아예 사전을 지워버리기로 했다.
그런데 지우개로 아무리 문질러도 다른 것은 다 지워지는데 한 단어만이 지워지지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문지르고 문지르다 마침내 지우개가 다 닳아지고 말았다. 지우개가 끝내 지우지 못한 단어는 바로 "사랑" 이었다. 이 지우개는 시간을 뜻한다. 시간은 모든 것을 망각 속으로 사라지게 만든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오직 한 가지 사랑만이 영원하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낡아지는데 오직 사랑만이 낡아지지 않는다.
요즘 가정마다 나이 드신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는 가정에 안고 있는 안타까움은 어르신들의 치매일 것이다. 치매에 걸리면 나타나는 증상이 여러 모양일 수 있지만 대표적인 것이 기억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과거의 일을 잊어버리지만 거의 마지막 까지 남는 것은 사랑하는 배우자와 자녀들의 얼굴이다.
사랑은 역시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은 형식이 아니라 깊이 체험함으로 마음 깊이 각인되기 때문이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시 34:8절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사랑은 머리로 할 수 없다. 하나님과의 사랑을 삶 가운데 깊이 누리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은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이 품어야 할 신성한 성품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지난주에 이어서 마지막 부분을 다룰 차례다. 믿음으로부터 시작하여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까지 살펴보았다. 인내 한다는 것은 성격적으로 참을성이 있고 없고를 말하기 보다는 성령의 열매다. 그러므로 참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가져야 할 덕목중의 하나로 힘써 이루어 나가야 한다. 성도는 현재의 상황에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하여 소망 가운데 나가야 하기에 소망을 이루는 인내의 요소를 신앙의 삶 속에서 이루어 야 한다. 경건은 우리의 신앙의 덕목 가운데 계속해서 이루어 가야하며 결국 주 앞에 섰을 때에 온전히 평가가 된다. 그러므로 경건을 위하여 계속해서 훈련하며 연습해야 한다. 경건은 경건한 척하는 외적인 자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적 요소를 말하며 우리 심령에 경건을 이루어 갈 때 외적으로도 자연스럽게 경건의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오늘 우리가 다룰 부분은 좁은 의미에서의 사랑과 넓은 의미에서의 사랑을 말한다.
1. 형제 우애는 좁은 의미에서의 사랑이다.
본문 7절 “경건에 형제 우애를”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율법에서 어느 계명이 중요한가를 묻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신다.
마 22:37-4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사도 베드로도 본서를 기록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맺혀야 할 합당한 신앙의 성품들을 말하면서 마지막 결론적으로 사랑을 말하면서 먼저 형제우애를 언급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형제는 어떤 대상인가? 여기서 형제는 단순히 부모 형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형제는 부모 형제를 포함한 같은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만 선택했다는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어서 같은 형제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대했다. 그러므로 율법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기는 이웃 사랑을 철저하게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형제의 범위에 있다. 성경에서의 이웃은 같은 유대인들만을 의미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사랑을 구분하여 먼저 형제 우애라고 했는데 이것은 이웃이라고 하는 범위의 가장 좁은 부분을 의미한다. 문자적인 의미는 한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온 혈육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킨다.
딤전 5:8절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딤전 5:16절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가 짐 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라”
요1서4:20절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형제우애에서 형제라는 의미는 좁은 의미에서 자기 가족 형제 친척 그리고 믿음으로 한 가족 된 교회 공동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믿는 성도들은 부모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더 나아가 같은 교회 성도들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은 선택적이 아니라 필수적인 요소다.
부모가 자식을 보면서 형제 우애하기를 교훈한다. 형제가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화목한 가정을 부모는 꿈꾸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교회 공동체를 보시며 원하시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가 된 공동체 안에 가족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끈끈한 정과 사랑이 이제 모일 순모임을 통해서 풍성하게 이루어 질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 우리의 사회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서로를 향하여 틀렸다고 손가락질하고 있다. 틀렸다고 하는 것은 틀린 것을 바로 잡지 않고서는 같아질 수가 없다. 사람들은 정답을 원한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는 정답은 없다. 내 생각과 저 사람의 생각이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다를 때는 서로 다름을 인정해주면 하나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흑백 논리 속에서 맞고 틀리고를 교육받아 왔다. 시험 칠 때도 사지선다형으로 하나의 정답을 찾았고 오 엑스 문제로 맞고 틀리냐를 구분해 왔다. 그러므로 서술하는 것에는 약할 수밖에 없다.
성경공부를 하면서도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자기의 생각을 피력하면서도 그것이 맞는가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한 교회를 이루며 그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자라온 환경이나 취향이나 좋아하는 것이나 추구하는 것들이 다 다를 수 있다. 성격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나하고 같은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끼리끼리 모인다던지 우리끼리라는 의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이지만 우리 안에서 각자의 다른 부분들이 있음을 인정하고 서로를 용납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나하고 다르다고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의식을 가질 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고 우리 안에 형제 우애의 아름다운 사랑이 풍성하게 이루어 지는 줄 믿는다.
2. 사랑은 모든 것들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사랑이다.
본문 7절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좁은 의미에서 나와 관계있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사랑하는 대상을 포함해야 한다. 율법을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고 유대인의 입장에서 이웃은 자기와 관계된 민족을 의미한다고 말씀 드렸다.
사랑의 대상이 나와 관계있는 사람만 해당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은 나와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형제라고 규정하면서 사랑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웃 사랑은 좀 더 넓은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이웃의 범위를 원수까지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우리는 우스개소리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면 그것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유는 자기 남편이 웬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편은 불쌍해서라도 사랑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생각할 때 원수는 내가 상대하기 싫고 이름조차 떠올리기 싫은 사람 일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까지 사랑해야 한다면 나는 할 수 없다고 포기해 버릴 것이다.
인간적으로 사랑을 펼쳐 나가다보면 그 대상이 너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내 가족을 제외 하고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이다. 그들을 향하여 비난하고 욕하라고 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할 수 있겠는데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니 얼마나 고민스럽겠는가? 이것 역시 인간적인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사랑의 계명을 실천할 수 없다.
갈 5:22절의 성령의 열매를 말하면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사랑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령 충만하지 않고 인위적인 마음으로 사랑하려고하면 그것은 외식하는 것이고 위선이 될 수밖에 없다. 기껏 한다는 것이 겉치레로 안부 인사나 물을 수 있다. 어떤 경우는 인사하기도 싫은데 인사나 할 수 있는 정도는 괜찮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요13:34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여기서 말하는 새 계명이라는 것은 없던 것을 새롭게 명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들에게 주셨던 율법을 말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율법이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할 수 있고 그것을 또 요약하면 사랑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러므로 먼저 주신 계명을 다시 강조해서 새 계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나 의지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에 주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주님이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위해서 몸 버려 피 흘려 죽어주시므로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 구원받은 나를 바라볼 때에 내 모습이 하나님 앞에 나오기에 합당한 모습은 아니다. 부끄러워 감히 얼굴조차 들 수 없는 죄인이다. 그러한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택하여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다.
이런 은혜와 사랑을 받았으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뻔뻔하고 가증한 존재인가?
그러므로 저 사람이 나에게 어떤 사람이고 나에게 어떻게 대했는가를 따지기 이전에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와 별 관계없는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일지라도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먼저 손 내밀기 바란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주인이 탕감해 주었다. 탕감 받고 기쁜 마음으로 나오다가 길에서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하고 옥에 가둔 사람의 이야기가 성경에 나온다. 이것이 우리 이야기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은혜를 입은 자들로서 우리 주변의 어떠한 사람이라도 포용하고 덮어주는 사랑의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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