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님을 기다리며
고후 13:4-5절
241222주일낮설교
우리에게 시대를 지나면서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말이 있다. 하나는 인사 가운데 식사 하셨는가를 묻는 말이다. 아침 점심 저녁 인사를 하며 평안을 묻거나 구하기보다는 식사에 대한 안부를 묻는다. 아침식사는 했습니까? 저녁에 만나면 저녁 식사를 했냐고 묻는다. 먹고 살기 힘든 세월을 보내면서 하루 세끼 식사하는 것이 큰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지내면서 힘들어 죽겠다는 생각이 지나쳐서 모든 말 뒤에 따라오는 것이 죽겠다는 말이다. 힘들거나 배고파서 죽을 지경인 것이 아니라 좋은 때도 좋아 죽겠다고 표현한다. 이제는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나이 든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이런 말을 주로 하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의 인사는 그냥 안녕하시냐고 안부를 묻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미국사람들도 안녕하시냐는 인사를 하고 있고 중동 사람들도 발음은 조금씩 다르지만 샬롬 즉 평안을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사가 식사 하셨는가를 묻는 말에서 안녕하세요로 바뀌었듯이 이스라엘 사람들도 자금은 샬롬 즉 평안하세요라는 인사를 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의 인사는 마라나타였다.
마라나타는 아람어로 된 인사였는데 이것을 신약성경에서 헬라어로 옮기면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고전 16:22절과 계22:20절에 나오고 있다. 헬라어로 된 원문을 대표하는 두 개의 버전이 있는데 하나는 UBS 3판으로 여기에는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로 되어 있고 다른 하나인 표준 원문에서는 “우리 주께서 오셨다”로 번역하고 있다. 우리가 쓰고 있는 개역 개정성경에는 UBS 3판을 따라서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그전에 사용하던 개역성경에서는“주께서 임하시느니라.” 번역했다. 이 두 해석은 미래적 의미와 현재적 의미에 강조점을 둔다는 점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둘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뜻이 다르지 않다. 주님은 성령을 통해서 이미 고린도 교인들에게 임하셨다. 동시에 주님은 궁극적으로 재림의 측면에서는 아직 오시지 않았다.
이미 오셨지만 완전히는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도 주님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 안에 거하시지만 재림의 주님은 아직 오시지 않았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신앙생활 해야 한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만 막연하게 기다리며 언제 오실지 몰라 기다림에 지쳐 포기하고 졸며 시간을 보내다 주님을 맞이하는 미련한 다섯 처녀의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 이미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모셔 들였기에 내 안에 주인 되신 예수님께 흡족함을 드리며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더 나아가 다시 오실 주님을 준비하며 깨어 기다리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로서의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는다.
우리는 성탄절을 앞두고 있다. 다른 교단에서는 대림절 내지는 대강절이라고 해서 성탄절 5주 전부터 1주 2주하면서 지켜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교단은 대림절이나 대강절이라고 해서 지키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번 주간에 성탄절이 들어있다. 성탄절을 앞두고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맞이해야 할 것 인가를 살피며 주시는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1. 믿음을 점검해 볼 수 있기 바란다.
본문 5절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다 바쁘고 분주한 삶을 살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다보면 우리에게 나타나는 현상들은 무엇인가를 자꾸 놓친다는 것이다. 잊어버리고 빠트리며 지나치게 된다. 어디에다가 핸드폰이나 가방을 놓고 다니는 것은 일상이고 심지어는 젊은 사람들도 약속도 잊어버리고 해야 될 일도 빠뜨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우리의 삶이 바쁘다고 해도 우리의 신앙에서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놓치고 살아서는 안 된다.
오늘 본문 말씀을 표준 새 번역 성경으로 보면 이렇다. “여러분은 자기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해 보고, 스스로 검증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모른다면, 여러분은 실격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믿고 바라보며 늘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열심히 일하고 생활하면서 내가 예수 믿고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면 큰 문제 아니겠는가? 표준 새번역 성경에는 직설적으로 실격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어느 날 내 삶을 돌아보니 내 손에는 예수님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짝하여 살아가면서 세상 속에 치우쳐 붙들고 있었던 것이 예수님인줄 알았는데 엉뚱한 형식적인 껍데기가 아닌가 돌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수님께서 12살 되었을 때에 육신의 부모는 어린 예수님의 성인식을 거행하기 위하여 성전을 찾았다. 모든 의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이 많아서 같이 오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걸었지만 어린 예수가 함께 동행 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밤을 지내고 다음날은 찾으러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하룻길을 왔기에 하룻길을 걷고 그 밤을 자고 그 다음날 예수님을 찾다가 예루살렘 성안에서 어린 예수를 만나게 된다. 그때 예수는 랍비들과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지금도 예루살렘 성을 방문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걸어보면 양쪽에 장사하는 사람들의 점포가 즐비해 있고 그 가운데로 지나가려면 내려오는 사람과 서로 부딪힐 정도로 좁은 길이다. 당시에도 그 좁은 길로 성전을 향하는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방심하다보면 사람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예수의 부모나 다른 친족들은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다른 것에 정신이 팔리거나 이것저것 구경하느라고 정작 예수님을 잃어버렸다.
우리도 세상에 치우쳐 살면서 예수님을 놓치고 엉뚱한 것을 잡고 예수님인양 동행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분주함 속에서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정신 차려야 한다. 정신 줄을 놓아버리면 사람이나 해야 할 일도 놓치게 된다. 다른 것은 잊어버리고 놓쳐도 우리의 신앙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망각하거나 뒷전으로 미루어서는 안 된다. 성탄절을 앞두고 세상에는 아주 조용하다. 성탄절이 언제 인지 전혀 인식할 수가 없을 정도로 예전에는 가게마다 울려 퍼지던 캐럴송이나 성탄 장식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형 몰이나 백화점에는 성탄장식을 하지만 축 성탄이라는 글자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성탄절이 큰 의미가 있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가 그저 생신 축하한다는 인사로 끝날 일이 아니다. 그러면 어릴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 기뻐 뛰며 즐거워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성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겨보며 먼저는 내 마음 속에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충만해 있는가? 아니면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형식적인 껍데기 신앙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목자의 뒤를 따라 동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본문 4절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빌 2:8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십자가는 낮아짐과 수치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산헤드린 공회보다 약하셔서 공회의 결정에 따라 수난을 당하셨고 죽임을 당하셨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기꺼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다. 요 10:18절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을 수도 있고 죽지 않으실 수도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우리 인류의 죄를 위해서 스스로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셨다. 스스로 모든 것을 행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 연약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일부로 약해지셨음을 말씀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약한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원의 길을 이루신 예수님을 다시 부활하게 하사 강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하셨다.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우편 즉 하나님과 같은 권능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하여 함께 하신다. 이 땅에 오실 때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시리라고 임마누엘을 약속하셨다. 지금도 살아 계신 예수님은 나와 함께 하시는 줄 믿고 임마누엘 주님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충만하기를 바란다.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은 목자 되셔서 나를 인도하시는 줄 믿기 바란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동일하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찾으라고 강력하게 권고 했다. 특히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을 말하면서 궁극적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많이 예언했다.
사40:10-11절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 하시리로다.”
이 땅에 오실 메시야는 목자로 오실 것을 말씀하신다.
요 10:11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수님은 항상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선한 목자이심을 확신하며 목자를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에게서 멀어지거나 떠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죽음이다. 목자는 양을 위하여 가장 안전한 길로 인도하며 좋은 꼴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그 목자 되시는 예수님과 늘 함께 동행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유명한 복음 전도자였던 죤 길모어 목사는 어느 날 작은 마을을 지나다가 주방용품을 팔고 있는 어느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요즘 장사는 잘 되시는지요? 예, 그럭저럭 잘 됩니다.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물론 믿지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렇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이 있지요. 그게 뭔데요? 그건 나를 구원해 준 그분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비록 거친 광야 길과 같아도 그 길에 나 홀로 내버려진 것이 아니라 임마누엘 되시는 주님이 목자가 되셔서 나를 지키고 인도해 주심을 확신하고 주님과 동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성탄절을 앞두고 성육신 하신 예수님만 즐거워하고 기뻐해서는 안 된다. 나를 사랑하셔서 구원해주시고 지금도 나를 사랑하고 계시며 늘 함께 하시는 예수님과 동행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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