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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같은 주의 은혜
2025-01-25 09:20:22
사무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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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같은 주의 은혜

16:11-20

250119주일낮설교

멕시코의 한 마을에 신기한 빨래터가 있다. 그 빨래터가 신기한 이유는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이 바로 옆에서 솟아나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뜨거운 온천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바로 옆에는 얼음물처럼 차가운 냉천이 솟아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곳에 와서 빨래를 한다. 뜨거운 물로 빨래를 삶고 바로 옆에 있는 차가운 물로 깨끗하게 행굴 수 있는 너무나 좋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 광경을 본 한 여행객이 빨래를 하고 있는 여인들에게 말했다. “빨래를 잘할 수 있도록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이 동시에 솟아나니 이를 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입니까?” 그런데 여인들은 감사는커녕 뜻밖의 반응으로 불평을 했다. “아니, 하나님이 좋은 분이라면 비누까지 내려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비누는 주지 않으셨네요.”

자연적인 법칙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은혜를 베푸셨음에도 주신 것에 대한 감격이나 감사 없이 오히려 더 주시지 않은 것에 대해 불평했다. 혹시 이것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로 애굽에서 구원함을 얻어 자유로운 신분이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압제 하에 있을 때 고통 가운데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바로의 손에서 빼내 구원해 주셨다. 애굽에서 나와 얼마 지나지 않아 애굽 군대가 추격해 왔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혔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가 갈라지고 그 가운데 생긴 길로 걸어서 홍해를 건넜다.

그리고 뒤쫓아 오던 애굽 군대는 홍해에 수장되었고 더 이상 쫓아오는 군대가 없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서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을 만나게 되었는데 써서 먹지 못할 물이었고 그들은 또 다시 원망과 불평하는 병이 도졌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마시게 해 주셨다.

이스라엘이 한 달 반이 지나자 그들이 가지고 나온 양식들이 다 떨어지게 되었기에 이제는 배고픔 가운데 먹을 것을 가지고 원망하고 불평했다. 그러자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먹을 것을 내려 주시는데 아침에는 만나를 내려 주셨고 저녁에는 메추라기 떼를 보내주셔서 매일의 양식을 허락하셨다.

매일의 양식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살펴보기를 원한다.

 

1. 하나님의 은혜가 이스라엘에 임했다.

 

본문 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본문 앞에 8절 중반절 부터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그러므로 본문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저녁에는 고기를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을 먹게 하심으로 이것을 그들에게 베푸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겠다는 것이다.

저녁에 제공되는 고기는 메추라기고 아침에 먹이시는 떡은 만나를 말한다. 그러므로 만나와 메추라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였다.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말이다.

구원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은혜다.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만나와 메추라기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스라엘이 노력하거나 그들이 잘나서 그들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 결코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조석으로 얻게 된 것이 받을만한 조건을 갖추었을 때에 받은 것이 결코 아니다.

어린 손주들이 조부모에게서 장난감을 얻었을 때에 그냥 좋아하지 은혜라고 여기지 않는다. 물론 어리니까 상황을 분별하지 못하기도 하겠지만 할아버지는 손주를 사랑해서 손주가 원하는 장난감을 사주고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것을 보면서 할아버지 마음도 흐뭇하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사랑에 겨워 베푸는 것은 은혜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전혀 관계없거나 아니면 나는 저 사람에게 대 놓고 욕하고 미워하는데 그것을 알고 있는 그 사람에게서 생각지 않게 귀한 선물을 받았다고 하면 그것은 은혜를 입었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조석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받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 만한 때에 받은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했고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알고 계셨다.

자기를 향해서 원망하고 비난하며 욕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진노를 발하셔야 하는데 진노 대신에 조석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다. 만나와 메추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었을 때 주신 것이 아니라 받을 수 없는 가운데 받은 사랑이었기에 하나님의 은혜인줄 믿는다.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고 계시는 줄 믿기 바란다.

아침에 눈을 떠서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순간순간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

감기로 인하여 코가 막혀 숨 쉬기가 힘들 때를 생각해 보세요. 찬송의 가사처럼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인줄 믿기 바란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의 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를 허락하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도 매일의 삶을 영위하게 해주시는 것이 나의 잘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깨달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우리가 구할 것은 일용할 양식이다.

 

본문 15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아침에 만나를 내려 주시고 그들에게 나가서 거두어 오라고 하셨다. 그러자 사람들은 욕심에 따라서 가져오기 시작했다. 본문에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들 가운데는 서로 많이 거두려고 다투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당 한 오멜씩을 거두라고 하신다.

오멜의 어근인 오메르는 한 단의 곡식을 의미하며 오멜은 오늘의 단위로 약 2.3리터를 의미한다. 만나 한 오멜은 한 사람의 하루 식량이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지정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더 많이 가져오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그보다 더 적게 가져오기도 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은 많이 가져와도 보관이 되지 않고 상해서 먹지 못하게 되었고 모자라게 가져와도 부족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다음날 만나가 내리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염려함으로 갑절로 가져왔지만 하루가 지나자 썩어 못 먹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리실 때에 매일의 일용할 양식을 허락하셨다. 사람들이 하루를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은 하루의 양식이다. 하루를 먹고 남는 것은 남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날의 양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날의 필요한 양식만 구하면 되는데 그 다음 날의 양식까지 더 얻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한 하루의 양식만 주셨고 그 이상의 것을 쌓아두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도 주기도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며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요즘은 집에서 개를 키우는 가정이 많아졌다. 개를 키우면서 개에게 사료를 주는데 어떻게 주는가하면 개 사료 한 봉투를 다 쏟아 부어주지 않는다. 밥그릇에다가 한 끼에 먹을 만큼만 준다. 식탐이 있는 개에게 계속해서 필요 이상으로 제공하면 개가 비만이 되고 각종 병에 걸리게 된다. 사람들이 개를 키울 때도 그렇게 하는데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불필요한 것들을 주시거나 필요한 것을 주지 않거나 하지 않으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다음날 혹시 만나가 내리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염려 때문에 하루치 이상을 거두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하루의 일용한 양식만 구하라는 것은 매일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양식자체만을 구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 손에 주어지는 양식이 어떤 것인가에만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매일의 양식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온데 간 데 없고 눈앞의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자연히 우리의 삶에서는 원망과 불평이 끊이질 않는다. 내가 받은 것에 감사하기 보다는 그것을 비교 평가하려고 한다. 어저께 받은 것과 같은가 아니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비교의식 가운데 원망이 떠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것을 주셔도 역시 마찬가지다. 왜 맨날 똑같은 것만 주시냐고 불평한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침에는 만나를 주시고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주셨다고 했지만 민수기에서 보면 만나만 주시냐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추라기를 보내 주셨다. 선물도 처음에 받을 때는 감사함으로 받지만 계속받다 보면 감사보다는 불평이 나오게 된다. 할아버지 나는 무엇을 받았지만 내 친구는 다른 어떤 것을 받았어요. 작년에도 이것을 받았고 올해도 이것을 받았는데 다음에는 다른 것을 주실 수 없나요 하는 불평을 들을 수 있다. 자기가 맡겨 놓은 것 찾아가는 것도 아니면서 요구하는 것에 있어서는 당연하게 여기며 오히려 불평하게 된다. 이것이 비단 철없는 어린아이의 모습뿐 아니라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자 오늘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철들은 성숙한 신앙의 모습은 내가 받은 선물 자체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매일의 만나를 받으며 만나 자체만을 바라볼 때는 만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는 무감각하게 된다. 그러나 만나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이슬 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된다.

이스라엘 땅의 이슬은 매일 내리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자고 있는 밤에 내려서 사람들에게 별 인식 되지 않지만 초목을 살리고 생물들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이슬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소나기가 아니다.

우리는 쏟아지는 폭포수와 같은 은혜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이슬 같이 느끼지 못하지만 생명체에 꼭 필요한 수분으로 우리의 삶을 매일 적셔주시는 분이신줄 믿기 바란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의 만나를 내려주셨던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보내 주셔서 구원으로 인도하신다. 자녀 된 우리들을 매일의 은혜로 인도해 주신다.

내 손에 가진 것이 무엇이고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보며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를 생각할 때에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시편 기자의 고백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기도하되 주신 것이 무엇인지만을 헤아리기 보다는 하나님으로 감사하며 즐거워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어지는 올 한해 이슬 같은 주의 은혜가 우리의 삶의 터전을 흠뻑 적시어 매사에 행복하며 평안한 삶이 넘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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