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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이 원하시는 그 교회
2024-12-17 10:21:08
사무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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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원하시는 그 교회

2:46-47

241215주일낮설교

기독교 사상가인 필립 얀시는 한 때 교회의 위선과 발생한 많은 문제들을 보고 교회를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은 연약하지만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이 남아있는 마지막 보루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도 복음이 교회 안에 있고 하나님을 향해서 새롭게 되려는 발버둥이 교회공동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서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교회가 사명에 실패하고 중대한 과오를 범하는 것은 바로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하는 인간들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때로는 과오를 범하고 실패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회가 생긴 것이 하나님께서 감행하신 모험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문제투성이고 자주 넘어지고 실패하는 존재임을 아시면서도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교회를 세우시고 그 안에 성도들을 공동체로 모이게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이 행하신 모험적인 결단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좋은 교회가 어디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찾고 있다. 교회에 출석하면서 이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를 살피기에 급급하다. 물론 자기에게 맞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를 생각할 수 있지만 세상에 완전한 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파랑새를 찾는 동화가 있는데 거기에는 파랑새를 찾기 위해 모든 곳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파랑새를 찾지 못하고 결국 자기 집에서 키우던 잿빛 비둘기가 파랑새임을 깨닫게 된다. 세상의 좋은 교회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신앙생활하고 있는 교회가 가장 좋은 교회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앞서서 좋은 교회를 만들기 위해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역사로 성령 충만한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한다. 이 때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자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다. 그래서 세례를 베풀고 예루살렘 교회가 태동 되었다.

본문은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 때 한국교회에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초대교회를 강조했지만 오늘날에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를 살펴보며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돌아보는 귀한 시간 될 수 있기를 바란다.

 

1. 예배에 열심 하는 교회였다.

 

본문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그들은 성전뜰에 모여서 기도하고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렸다. 당시에는 지어진 교회 건물이 없었고 그들이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며 함께 모여 신앙생활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직까지는 로마의 심한 박해와 감시는 없었지만 유대인들의 박해가 있었다. 각종 이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 인가 하는 기대감에 예수님을 따랐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세상의 구세주로 오셨지 이스라엘의 독립이나 구원을 위해 오시지 않았다.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뀌었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소리치는 폭도들로 변하고 말았다. 자기들을 실망시킨 예수님을 처형하고 그 여세를 몰아 그의 제자들까지 핍박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예수의 이름만 들먹여도 핍박이 가해지는 상황에서 감히 예수님의 이름을 전한다는 것은 모험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다락방에 모여 있다가 성령 충만 하자 마음에 불이 일어나 사람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열정이 일어났다. 성령 충만한 모든 사람들이 다 나와서 복음을 전했고 베드로가 복음을 전했을 때 삼천 명이 믿고 주께 돌아와 세례를 받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 교회가 태동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모여 예배하며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이 거하는 중심 도시였기에 그곳에서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기독교인들이 유대교를 반대하며 모여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할 때 유대인들의 박해와 심한 핍박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 상황으로 삼천 명이 들어갈 교회를 세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재정을 모으고 건축을 하려고 해도 몇 년이 걸려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일 수 있는 만큼 가정에서 모임을 가지며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12제자들은 예루살렘에 흩어져 예배드리는 그 가정 교회들을 돌아보며 예배를 인도했다.

 

몇 년 전에 국민일보에 실렸던 기사다. 며칠 전 ‘14시간 기다려서 먹은 햄버거라는 제목의 TV뉴스를 봤다. 미국 콜로라도주 오로라에 신규 오픈한 햄버거 매장에 사람들이 몰렸는데 자동차 줄이 무려 3나 됐고 어떤 손님은 자동차 안에서 14시간이나 기다렸다가 햄버거를 샀다는 내용이었다. 자기 동네에 유명한 햄버거 매장이 문을 연다고 불편한 자동차 안에서 엉덩이가 아픈지도 모른 채 14시간이나 기다렸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문득 누가복음 19장에 등장하는 삭개오가 떠올랐다. 자신이 사는 동네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동네 입구로 뛰어나가 예수님의 얼굴을 보기 위해 돌 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 앉아 있기 불편한 나뭇가지였지만 엉덩이가 아픈 줄도 모르고 기다린 삭개오 결국 예수님을 만나고 자기 집에 모셔 들이고 구원 받게 되었다. 지금 주님께서는 주님과 만남을 사모하며 주일예배를 기다리는 예배 자 엉덩이가 아파도 끝까지 예배 자리를 지키는 그런 예배 자를 찾고 계신다.

 

교회는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일에 최 우선순위를 두며 모여야 한다. 예배가 무너지면 결국 교회는 존속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예배가 신앙생활의 마지막 보루라는 의식을 가지며 우리의 생명 다하는 그 순간까지 예배드리는 일에 열심 하시고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예배하는 예배자라는 찬양을 부르고 있지만 내가 진정 참된 예배자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기 바란다. 주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는 이렇게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예배 자들로 가득 찬 교회를 말한다. 주일에 다른 일이 있고 몸이 피곤해서 쉬고 싶어도 나를 만나기를 원하시고 기다리시는 주님이 있는 교회에 주님 만나기 위해 주께 달려 나와 예배하는 귀한 예배 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예배의 열정으로 주님을 찾아 나오는 예배 자가 있는 교회가 주님이 찾으시는 바로 그 교회인줄 믿는다. 우리 교회가 바로 주님이 찾으시는 그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교제가 넘치는 교회였다.

 

본문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본문에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라는 것은 성도의 교제가 있는 교회였다.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이것은 성도의 교제가 식탁교제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교회는 전체 인원들이 모여서 함께 드리는 예배가 있어야 하는데 온전한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공 예배를 통해서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 공 예배를 통해서는 수평적인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수평적인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소그룹 모임인 순 모임이다. 그런데 어떤 순은 편성되어 있어도 관심이 없고 왜 모여야 하는지에 대한 특별한 의식을 갖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되어 왔다.

순모임은 바쁘게 살아가는 성도들을 피곤하게하고 힘들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다. 이 순모임은 우리 교회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한정된 특별한 교회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 교회 역사에 있어서 구역예배로 부흥한 교회는 여의도 순복음교회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모르겠는데 예전에는 그 교회에서 구역장들에게 지급한 빨간 가방은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다. 빨간 가방을 든 구역장들은 가방을 흔들며 구역 원들을 심방했고 전도에 힘썼고 여의도 순복음 교회 구역모임은 부흥하는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한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교회들이 예전부터 가정에서 모이던 구역모임을 통하여 서로 알아갔고 함께 사랑을 나누며 위해서 기도하는 귀한 교제의 장이 되었다. 구역 원들은 구역장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생활 패턴이 바뀌게 되었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작은 공동체의 모임이 성도들의 굳건한 신앙생활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구역모임이 이제는 교회별로 다른 명칭으로 불리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교회의 주춧돌이 되고 있다. 우리교회는 순모임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건축으로 인한 예배당 이전과 코로나를 겪으면서 순모임이 약화되었다. 순 모임은 단순히 짧은 시간 모여서 찬송 부르고 주보에 나와 있는 교재의 문제를 물어보고 별 이야기가 없으니까 순장이 답을 말하고 광고하고 기도로 마치는 것이 되어서는 의미가 없다. 이런 모임이 계속되다 보니까 모였던 순 원 들도 왜 모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고 모임에 참석하지 않게 되고 한두 명 빠지게 되니까 모일 사람이 없어서 순 모임이 안 된다고 불평하게 된다. 모일 가치가 있고 준비된 모임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모이고 싶어 하고 잘 안모이던 사람들도 소문을 듣고 참석하려고 할 것이다. 지금 이 시간 누구를 탓하고 책망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이번 주부터는 순장 공부와 순 모임이 방학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내년에는 새롭게 변화된 순 원들로 구성된 순이 편성될 것이다. 내년부터는 순 모임이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모이며 활성화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전체 예배를 통해서 갖지 못하는 성도의 교제가 이 순모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여기에서 진정한 형제 사랑이 나타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함께 삶을 나누고 또 기도제목을 나누며 간절하게 눈물로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따뜻함이 넘쳐나야 한다. 순 원의 어려움을 교회에 알려서 교역자와 교회의 도움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

순모임에서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높여 주는 예수님의 겸손함을 맛볼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은 지식이 순 모임에서 생활화되고 실천되는 은혜가 넘쳐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약한 믿음의 성도들이 이 순모임을 통해서 믿음이 다시 새롭게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전도하고자 작정하는 VIP들이 먼저 순모임에 나오면서 교회를 간접경험하게 되고 정한 시간에 교회 예배로 인도되는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 일의 귀중함을 인식하면 된다.

교회는 수직적으로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예배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고 수평적으로 성도와의 교제가 순모임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수레가 예배와 순 모임이라는 두 수레바퀴를 통해서 잘 굴러갈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가게 될 줄로 믿는다.

 

공 예배와 순 모임이라는 두 수레바퀴가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어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아름다운 그 교회를 이루어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든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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