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세상에서 성도가 사는 법(2)
성도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성품
벧후 1:5절
250209주일낮설교
UCLA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로저 고울드박사에 의하면 한 사람이 성인이 되기까지는 7단계의 발달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도망의 시기 → 탐색의 시기 → 투쟁의 시기 → 회의의 시기 → 불안의 시기 → 회고의 시기를 지나면서 비로소 한 인간의 성숙의 시기에 도달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가 언제인가 하면 50세 이상이 되어야 나를 알고 나와 너의 관계를 알게 되는 성숙의 시기에 접어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의 이론에 의하면 50세가 안 된 사람은 아직 사회적으로는 미성숙자라는 것이다. 그러니 한 인간이 성숙한 인격체가 된다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참으로 오랜 인고의 시간이 지나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간의 성숙에 대한 이론이라면 오늘 여기에 아주 중요한 한 가지를 더 알아야 한다. 바로 오늘 성도 된 우리들이 반드시 이루어야 할 또 하나의 성숙으로 이른 바 영적 성숙이다. 영적 성숙은 몇 살이 되어야 이룰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고 그렇다고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신앙의 성장과 성숙은 인격이 성숙되어 가는 것처럼 내면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키 크는 것은 육신의 눈으로 인식되지만 신앙의 성숙은 눈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또한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 감에 있어서 어느 정도 성숙하다가 잠시 머물 때에 제 자리에 정체해 있는 것이 아니라 뒤로 퇴보하기도 한다. 싸이클을 그리는 것처럼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면서 전진한다. 신앙의 경주를 시작했으면 계속해서 달려야 하듯이 우리의 신앙생활도 힘들지만 쉼 없이 달려가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그러므로 라고 시작하고 있는데 이것은 지난주의 말씀과 연결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벧후1:1-4절 말씀을 통해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이 구원이 가치 없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얻는 가운데 나에게까지 저절로 이르게 된 것이 아니다. 내가 힘써서 얻은 것이 아니라 비록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우리의 구원의 가치는 사도였던 베드로와 동일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귀한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이렇게 귀한 믿음을 얻은 우리들에게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도 함께 허락되었는데 그 약속은 예수님의 재림 시에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약속을 받은 성도들은 이 땅에서의 삶을 살면서 썩어질 세상의 것들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세계를 소망하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본성을 따라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주어지는 벧후 1:5-7절 말씀에서는 신성한 성품을 어떻게 이루어 가야 하는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5-7절에서는 8가지의 신앙적인 요소를 말씀하고 있고 이것들이 다 중요하기에 한꺼번에 스쳐 지나가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서 둘씩 묶어서 말씀을 나누어 보기를 원한다. 오늘은 5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신앙적인 성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며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1. 믿음은 기본적인 신앙 성품이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신앙 성품은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본문 5절 말씀 가운데서도 너희가 더욱 힘써 라고 말씀하고 있다. 물론 더욱 힘쓰라고 하면서 믿음에 덕을 이라고 말씀한다.
그런데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힘써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구원 얻는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존재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던 불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게 되면서 우리 신앙생활이 시작된다. 그런데 믿지 못하던 불신의 상태에서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가?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믿게 하지 아니하시면 죄로 인하여 죽었던 심령이 자의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며 신앙생활이 시작되는데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갖는다는 것이 우리 스스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주셔야 얻을 수 있다.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을 향하여 다른 말로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성경을 믿음의 책이라고 부르고 있다. 성경에는 계속해서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에 대해서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히11: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 말씀을 믿음의 정의라고 하지만 이것은 히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믿음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2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11:1절에서 말하고 있는 믿음의 정의는 히11장에 나오는 사람들의 믿음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면 성경을 통해서 발견되는 것이든지 또한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 믿음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 정확한 대답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믿음이란 나의 삶 속에서 내 생각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대로 행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브라함을 가리켜 믿음의 조상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
농경시회에서 본토를 떠나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지 못한 채 가족과 양떼를 거느리고 정처 없이 길을 떠난다는 것이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불합리하고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기의 처지와 형편을 바라보지 않고 말씀에 따라 그대로 순종했는데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을 가지고 설교했을 때 아브라함처럼 그대로 순종하여 살던 집을 덜컥 팔아버리고 직장에 사표를 내거나 사업을 정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시험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질 때는 어떤 의리로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는 것에서 떠나라고 하시는 말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소중하고 귀하게 붙들고 있는 것을 놓으라고 했을 때 즉각적으로 순종하지 못하고 머뭇거릴 것이다. 그러한 말씀 앞에 내 생각과 하나님 말씀이 부딪히게 된다.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라고 했지만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여 붙들고 있는 것을 놓아버리면 나의 삶이 무너지는 것 같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갈등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붙들고 있는 그것이 내게는 좋아 보이고 그것으로 삶의 기쁨과 행복을 얻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게 중요하게 생각되고 인생의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더욱 굳게 붙잡기를 원하신다. 그렇다고 성도들이 취미생활이나 가정이나 직장을 다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꼭 삶에 필요해서 해야 되는 것에 대해서까지 다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시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은데 내게 있어서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 중에서 그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리 하는 것이라든지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말한다. 믿음으로 행하는 것은 내 생각이나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내 생각이나 내 뜻을 앞세우기 보다는 하나님이시라면 무엇을 원하시고 어떻게 하기를 원하실까 를 물으며 내 생각이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덕은 믿음을 보완하여 온전한 믿음이 되게 한다.
믿음이라고 할 때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온전한 믿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그것은 당연히 외적으로 그 믿음의 행위들로 드러나게 되고 그것을 통하여 온전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믿음에 덕을 쌓으라고 말씀한다. 여기에서 ‘덕’이란 ‘도덕적으로 선한 삶’을 의미한다. 믿음은 반드시 ‘삶으로 증거’되어져야 하고 그 삶의 증거는 반드시 ‘선한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죄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님을 믿기 전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 못 박고 다시 거듭나서 의와 진리의 말씀으로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가 선한 삶을 사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당연히 행해야 할 필수사항이다. 그러므로 선한 삶은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본성인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루어야 하며 더 나아가 구원받은 믿음의 사람임을 드러내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생기게 된 설에 대해서는 다양한데 그 의미는 부와 권력은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수반한다는 것이며 주로 지도층 혹은 상류층이 그 위치에 걸 맞는 모범을 보이는 행위를 표현할 때 혹은 그것을 어기는 이들을 비판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말로 쓰인다.
이것을 우리 신앙생활에 적용해 보면 오랜 신앙생활을 했거나 직분 자들 내지는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은 그에 합당한 신앙의 행위가 나타나야 한다. 직분이 오래된 사람이나 초 신자나 행동에 있어서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다. 교회 안에서 믿음이 오래되고 직분이 오래된 성도들은 믿음의 약한 사람들을 위해 우리의 믿음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신앙이 약한 사람들을 위하여 짐을 져주어야 한다.
갈 6:2절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등산전문가들은 높은 산을 올라갈 때 등산하는 사람들에게 짐을 균등하게 나누어 짊어지고 산을 오르게 하지 말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짐을 균등하게 나누어 짊어지고 산을 올라가면 그 짐이 자신에게 버거운 사람 때문에 속도가 쳐지게 된다. 그래서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힘이 센 사람에게는 좀 더 무거운 짐을 약한 사람에게는 가벼운 짐을 지게 하여 산을 오르게 하면 적당한 속도로 산을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믿음의 직분 자들은 신앙이 연약하거나 아직까지 교회에 적응하지 못한 성도들을 배려해야 하며 물질적인 복을 누리는 성도들은 가난한 성도들을 돌보아주어야 하고 또 행복하게 살고 있는 성도들은 불행과 환란을 당한 성도들을 보살펴 주어야 한다. 옛날 독일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Der Klügere gibt nach”라는 말을 가르쳤다고 하는데 이 말은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뜻으로 지혜 있는 자가 양보를 하며 져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원리는 교회 공동체 생활에도 그대로 적용해야 된다.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여 가는 성도들의 삶에 신앙이 약한 성도의 짐을 대신 져줌으로서 약한 자에게 유익이 되고 공동체에 덕이 되게 해야 한다. 이기려고 이 사람 저 사람과 다투지 말고 져 주는 것이 성숙한 성도요 사랑이 풍성한 자의 모습인 것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자가 되었으니 그 믿음의 모습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바란다. 우리의 삶 속에서 믿음의 아름다운 덕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며 배려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감으로 하나님과 다른 성도들에게 인정과 칭찬 받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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