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소원성취의 비결
시 37: 4-6절
250126주일낮설교
25년을 맞이하면서 벌써 한 달이 지나가는 1월의 마지막 주일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주 수요일이 구정이니까 음력으로는 새해를 맞이하는 주간이다. 신년 초에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서로 덕담을 건네며 인사들을 나누었지만 사람들은 구정 명절을 맞이하면서도 역시 동일한 인사를 나눈다.
복이라는 개념이 동서양이 조금씩 다르고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동양적인 개념에서의 복을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복의 개념에 대해서도 어려서부터 은연중에 교육을 받았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동화책을 읽기 보다는 할머니나 윗사람으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다. 옛날이야기는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등골이 오싹한 귀신이야기와 또 하나는 흐뭇한 이야기다. 흐뭇한 이야기라는 것은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전부 착한 사람이고 나쁜 사람들에 의해 갖은 고생을 한다. 그러나 결말 부분에 가면 반전이 일어나서 결국 착한 주인공은 잘 되고 괴롭혔던 나쁜 사람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착한 주인공이 잘되는 결과는 거의 동일하게 고래 등 같은 큰 기와집에서 온갖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서 좋은 옷을 입고 많은 자녀들과 함께 오래 오래 잘 살았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다르고 나쁜 사람들이 괴롭히는 형태는 달라도 끝은 거의 대등소이하다.
다시 말하면 착하게 살면 복 받는데 잘 먹고 좋은 옷 입고 많은 자녀들과 함께 좋은 집에서 떵떵거리며 잘산다는 것이 복의 개념으로 어려서부터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환경을 보면 이러한 논리가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믿음의 모습을 잃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세상으로 발걸음을 내디뎌 생활하다 보면 요지경 같은 세상에 대하여 갈등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복은 단지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평안과 행복한 가운데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역시 우리와 같은 생각 속에서 살았고 동일한 고뇌 속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러한 사람들을 향하여 다윗은 믿음의 권면을 한다.
시37:1절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세상의 역사는 자연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돌고 도는 것도 역시 아니다. 인류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세상 역사는 움직인다. 그렇다면 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행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적당하게 처리하시는 것이 아니라 선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이루어 가신다. 선하신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의 아버지가 되시며 목자가 되셔서 양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좋은 것으로 채우시고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변화무쌍한 세상의 흐름에 따라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변함없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식하며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나갈 때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고 했는데 소원 성취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며 복된 한 해의 삶을 이루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1. 하나님을 기뻐해야 한다.
본문 4절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하나님만이 참된 기쁨의 근원이심을 확신해야 한다. 우리 개역 개정 성경과 영어 성경의 번역의 차이가 있다. 영어 성경에서는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개역 개정 성경에는 여호와를 기뻐하라고 되어 있다. 히브리어 알이라고 하는 단어를 영어 번역본들은 “안에서 (in)” 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반해 한글 번역본들은 “~ 때문에 (because of)” 라고 번역하고 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표현은 “여호와 때문에 기뻐하라,” “여호와를 기쁨의 근원으로 삼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라고 하지만 가정에서 물을 쓰는 데에 조금도 부족함이나 불편함이 없다. 제가 어렸을 때 서울에서 살았는데 제가 살던 집에는 집안에 우물이 있어서 그 물을 길어서 먹었기에 물에 대한 불편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서울의 산언덕에 형성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마을의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길어먹어야 했기에 물지게를 지고 물을 퍼 날라야 했다. 얼마나 불편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가정마다 수도가 설치되니까 물에 대한 불편함이 없어졌다. 물을 길어 와야 되는 것도 아니고 물을 준비해야 할 필요도 없다. 필요하면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나와서 마음대로 사용하게 되었다.
우리가 기쁨의 삶을 살기 원한다면 억지웃음을 만들거나 웃을 일이 생기기를 바라지 않아도 기쁨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그 하나님으로 인하여 늘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바꾸어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것은 우리가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우리의 소원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것 때문에 기뻐하면서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 성도의 기쁨은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소원 때문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어여삐 여기사 우리의 모든 소원에 만족함으로 채워 주시는 줄 믿기 바란다.
물론 세상 속에도 기쁨이 있다. 서양 속담에 “한 시간을 행복하려면 목욕을 하고 하루를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또 일주일을 행복하려면 여행을 떠나고 한 달을 행복하려면 차를 사고 일 년을 행복하려면 집을 사라”고 했다. 이것은 사람이 행복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하지만 그 행복이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본 시편의 기록자인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었고 원하는 것은 언제든지 자기 앞에서 시행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참 기쁨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이 참 행복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세상의 기쁨을 구하기보다는 기쁨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구하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마음을 다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이 있을 때 우리 마음은 하나님 때문에 기뻐할 수 있고 뜨거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진정으로 사랑하면 사랑하는 그 대상과 함께하는 것이 기쁘고 즐겁다.
가수들이 팬 사인회를 할 때 많은 팬들이 모인다. 그들에게 오라고 차표를 보내주거나 기름 값을 주는 것도 아닌데 거리에 관계없이 많이 모이는 것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는 지금은 잘 모르겠는데 전에 어떤 배우는 일본에서 나이든 아줌마부대가 찾아와서 환호하는 것을 방송에서 보았다. 그들이 그렇게 열광하는 이유는 배우나 가수에 대한 아끼는 마음과 좋아하는 마음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을 생각하면 거리나 시간에 관계없이 열정적으로 찾아서 환호한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한낮 인기 연예인만도 못한 분이 아니신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윗은 하나님에 대해서 그 무엇보다도 더 존귀하고 가치 있는 분으로 인식하여 그의 마음 중심으로 사랑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넘치는 놀라운 것들로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실 줄 믿는다.
2.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기를 바란다.
5절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여기서 ‘맡기다’는 말의 문자적 의미는 ‘굴리다’라는 뜻이다. 내 손에서 하나님의 손으로 굴려 보내는 것을 말한다. 굴린다는 것은 흘려보낸다는 것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즉 기울어진 곳으로 흐르는 것을 말한다. 물체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과 같이 성도가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자신의 문제들을 하나님께로 흘려 보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나 문제들을 내가 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흘려보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 흘려보내면 문제가 내게서 떠나가고 하나님께서는 흘러들어온 어떤 문제든지 다 해결해 주시는 줄 믿기 바란다.
흘려보내지 못하고 쌓아두면 불평과 원망이라는 이름으로 고이게 된다. 결국 우리 안에서 고여서 썩어 냄새나게 되고 영혼과 육신까지 상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기면 즉 기도로 흘려버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이루어주신다고 약속하신다.
그러면 네 길을 맡기라는 말 가운데 길이란 문자적 의미로 길이라기보다는 인생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같은 의미의 말씀이 잠언에 나와 있다.
잠16:3절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여기서 말하는 행사도 사람이 시도하는 모든 일을 말한다.
사람이 자기 의지로 무엇을 하려고 발버둥 치면서 기도할 때는 하나님의 아무런 응답이 없다.
나는 애타서 죽을 지경인데 하나님은 꿈쩍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길 때에야 비로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수상 구조대원들이 가서 건져낸다. 그러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는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고 그냥 기다린다. 밖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나 허우적거리는 사람은 죽을 지경이다.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가까이 가서 구조하려고 하면 물에 빠진 사람은 죽기 살기로 구조대원에게 달라붙는다. 그러면 아무리 힘센 구조대원이라도 같이 뒤엉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결국 둘 다 물에 빠져 익사할 수도 있다. 그런 것을 잘 모르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한 사람에게 즉각적으로 가서 구조 활동을 벌이다 둘 다 어려움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련한 구조대원은 기다렸다가 물에 빠진 사람이 거의 기진맥진하여 힘이 빠지면 그제 서야 구조를 시작한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여 허우적거릴 때는 하나님께서는 일하시지 않고 가만히 방관하고 계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이 방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지켜보신다. 자신을 의지하고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해보려고 발버둥 칠때는 잠잠히 기다리신다. 그러다가 이제는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포기하면 비로소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된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서 무엇을 해보려고 얄팍한 술수를 쓰기 보다는 하나님께 일찍이 두 손 들고 항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신뢰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 인생의 보호자 되심을 믿고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며 믿음으로 나가시기를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우리의 삶에 놀라운 하늘의 복과 땅의 복으로 넘치도록 채워 주실 줄 믿는다.
이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게 임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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