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자녀행복을 위해 가져야 할 마음
엡 6:4절
250504주일낮설교
로마시대에 코르넬리아라고 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 한번은 그 집에 여러 명의 귀부인들이 놀러 와서 차를 마시며 자기들의 보석을 자랑했다. “이 목걸이는 다이아인데 어떻습니까? 이 사파이어 반지는 어때요?
이 금팔찌는요?” 코르넬리아 부인은 그들의 자랑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러자 그 중에 한 명이 코르넬리아 부인에게 부인도 좋은 보석이 있으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자랑도 하라고 요청했다. 코르넬리아 부인은 안으로 들어가더니 양 팔에 쌍둥이 아들을 안고 나왔다. 그것을 본 다른 부인들이 이것은 아이들이고 보석은 어디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코르넬리아 부인은 나의 보석은 이 두 아들이라고 대답했다. 이 자녀들이 자라서 흣날 로마의 큰 인물들이 되었는데 로마 건국의 기초를 놓은 그라쿠스 형제였다.
자녀는 보석상자라는 말이 있다. 보석함 속에는 여러 가지 보석이 담겨 있다. 그러나 보석을 담고 있는 보석상자는 투박한 것일 수 있고 하찮은 것일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보석함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진귀한 보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유명인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공개할 때가 있는데 어떤 경우에는 우리에게 놀라움을 금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 어떻게 저렇게 보잘것없이 생겼고 볼품없는 모습인데 그 얼굴에서 이런 훌륭한 인물이 나왔는가 하는 의아심을 갖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사람의 모습이 어릴 때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고 겉으로 보여 지는 어여쁨 보다는 내면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베들레헴에서 양치는 목동이 있었다. 그 집에는 모두 8명의 형제가 있었는데 그중에 제일 막내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의 형들은 출중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루는 사무엘이 이새의 집을 찾아 준비한 기름 뿔에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을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이새에게 아들들을 내게로 이끌어 오게 하라고 말한다. 첫째 엘리압을 보자 사무엘의 마음이 동했다. 이 사람이 사울을 이어 왕이 될 상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고 하시며 통과 시켰고 둘째 아비나답을 보았을 때도 같은 마음이 들었지만 역시 통과시켰다. 셋째 삼마를 보면서도 이 사람을 왕으로 세우시겠구나하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없었다. 이렇게 해서 7명을 다 그냥 지나치게 하셨다. 더 없냐고 하자 말째가 있는데 그는 양을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말째인 다윗은 아버지 보기에도 별 볼일 없는 아이처럼 보여서 들판에서 양이나 치게 했었다. 그러나 데려왔을 때 그를 보자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고 성경은 증거한다. 아름답다는 것은 외면의 아름다움 이라기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사람들의 눈에는 별 볼일 없는 아이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그 안에 숨겨진 믿음의 아름다움을 보셨고 이스라엘을 위하고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큰일을 감당할 그릇으로 여기시고 그에게 기름을 붓게 하셨다.
그러나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모세가 출생했을 때에 모세의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서 키웠다. 당시에 남자 아이가 출생하면 나일 강에 던져서 죽여야 되는 상황에 요게벳은 아들의 잘생긴 것을 보았다고 했는데 이것은 모세의 외적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뻐한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 자식이 안 예쁜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인간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아이를 숨겨서 키우지는 않았다. 요게벳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었겠지만 이 아들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는 믿음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오늘도 우리의 자녀들이나 우리 교회의 다음세대를 바라볼 때 육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식하는 믿음으로 바라보며 축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우리의 자녀 손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할 것인가를 말씀을 통해 살펴보기를 원한다.
1.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으로 양육할 수 있기를 바란다.
4절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아비들 이라는 말로 이것은 아버지들에게 해당되는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1절에 보면 자녀들이 순종해야 할 대상으로 부모를 지칭하고 있다. 그러므로 문맥상으로 볼 때 이것은 부모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부모들은 자기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은 당시 사회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표현이다. 당시 가부장적인 제도의 헬라 사회에서는 아버지에게 자녀에 대한 모든 권한이 주어졌다. 심지어 로마에서는 어머니가 자녀를 낳아 남편에게 보일 때에 만약 아이의 아버지가 자녀를 손으로 들면 키우지만 기형 등의 이유로 아버지가 그 아이를 들지 않으면 죽일 정도였다. 자녀에 대한 모든 권한이 그 부모에게 주어지고 있던 사회에서 성경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다.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 공동번역에서는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라고 번역하고 있다.
오늘 같은 사회 문화 속에서 이 말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이천년 전의 상황에서 이 말씀은 그 자체가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자녀들에 대한 인권이 보장되지 않은 사회에서 자녀는 그저 부모의 대리 만족을 보상해 주는 존재에서 그 자체의 가치를 따라 양육해야 함을 말씀한다.
부모 때문에 생기는 마음의 상처가 가장 클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자녀를 내 자녀라는 인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의 자세로 양육하는 부모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서 사람들의 인식이 매우 달라졌고 자녀에 대해서도 자녀의 장점을 살려 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양육하는 부모가 많아졌다. 시대가 어떻든 믿음의 성도 가정에서는 성경적인 자녀관을 가지고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
시 127:3절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표준 새 번역 성경에서는 여호와의 기업을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번역했다.
우리의 자식이라고 여기고 지났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자녀를 양육할 때에 자기 소유권을 내려놓고 주인의 뜻대로 양육하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는 내 자녀라는 생각에 자녀들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들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자녀가 잘 되는 것을 보면서 자기만족에 젖어든다.
더 나아가 내 자녀라는 생각속에서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요구하고 잘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하는 염려하는 마음에 자녀에게 야단치고 잔소리를 한다. 자녀는 우리 가정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자녀들을 위하여 힘써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니까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시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방심하지 말고 늘 깨어서 자녀를 위하여 밤낮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부모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인생이 되기를 위해서만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믿음의 사람으로 양육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욥 1:5절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이 번제를 드리면서 자기 자녀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다. 욥이 말하기를 이라는 것은 욥의 기도소리다. 기도 제목은 다른 것이 아니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는 것이다. 욥은 자녀들이 신앙의 사람으로 온전히 성장되기를 위하여 기도했다. 욥의 자녀들에 대해서 욥 42장에서는 욥의 세 딸들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시에는 족보에 여자들의 이름이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성경은 욥의 세 딸들에 대해서 칭찬하고 있다면 욥의 아들들의 삶은 얼마나 훌륭한 삶을 살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우리 부모들이 자녀를 위하여 많은 수고를 기울이고 있는데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너에게 맡겨준 내 자녀들을 너희가 어떻게 양육했는가를 물으실 때에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내 놓을 것이 있는 믿음의 부모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신앙 중심적으로 양육할 수 있기를 바란다.
4절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우리 기성세대는 자녀 세대에 대하여 입에 붙어 다니는 말이 바로 나 때에는 이라는 말이다. 자기가 경험한 시대의 방법들이 최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시간이 흘러 모든 환경이 바뀌었고 사람들의 의식수준도 상당히 달라졌다. 그러므로 기성세대에게 있어서는 공감되는 말도 신세대에는 오랜 과거의 옛 유물처럼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이나 경험으로 교육하기를 바라기 보다는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자녀는 우리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접근해야 한다. 본문에서는 이것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됨을 말씀한다. 교훈은 훈련과 교육 또는 징계라는 의미의 단어다. 훈계는 자녀들에게 말을 수단으로 가르치거나 교훈을 주는 형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잘못했을 때 감정적으로 먼저 매를 들거나 감정 섞인 표현의 언어는 자제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말씀이다.
딤후 3:16-17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자녀를 잘 이해해주고 함께 놀아주고 대화하며 여행도 가주는 것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할 수 있는 기회를 잘 포착하여 하나님말씀으로 양육해야 한다.
신 6:6-7절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라고 하니까 자녀를 앉혀놓고 길게 설교하라는 것이 아니다. 말이 길어지면 아이는 마음의 문을 닫고 그저 앉아있기만 한다. 가만히 듣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녀를 향하여 성경의 지식을 장황하게 늘어놓아도 이미 아이의 마음의 문은 닫힌 상태에서 서로가 힘만 빼는 시간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라니까 자기 생각을 말하면서 성경말씀인양 포장해서는 안 된다.
신 6:6절에서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라는 말씀은 먼저 부모가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하나님 말씀을 잘 알아야 되는것이 아니라 부모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잘 알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기는 잘 못하면서 입술로만 자녀들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자녀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라간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양육할 때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양육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바로 깨달아 사명 감당하여 하나님께 칭찬받는 자녀들로 양육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바르게 양육하여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주신 자녀로 인하여 하나님께 잘했다는 칭찬과 상급 받는 부모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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