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행복은 바른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마 5:3-12절
251102주일낮오이코스행복축제
전문가들은 도박 중독의 위험성이 돈을 잃는 것도 있지만 더 큰 것은 일상의 행복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갑자기 일확천금을 얻게 되면 처음에는 큰 행복을 느끼는 것 같지만 더 이상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일터에서의 수고나 가족 간의 정겨운 식사와 자녀들과의 놀이 그리고 땀의 보상 같은 것들은 다 사라지고 결국 파국에 이른다고 경고한다.
‘트렌드 코리아 2025’에서 새해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로 ‘아보하’라는 흥미로운 단어를 꼽았다. ‘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말의 줄임말로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마저도 피로해진 사회 속에서 지극히 평범한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새로운 행복 론 이다.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자신만의 행복이라고 할 때 손경민 목사의 행복이라는 찬양 가사가 떠 오른다.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사람들은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서 동분서주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화려하게 핀 장미꽃을 보면서 사람들은 장미나무에 가시가 있다고 투덜대지만 어떤 사람들은 가시나무에 장미꽃이 활짝 핀 것에 감사 한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생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과 비교할 때 자신이 초라해지고 비참해 질 때가 많이 있다. 남의 것이 더 커 보이고 자신이 가진 것에는 만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창공을 나는 까마귀는 자기의 검은 털만 가지고 있는 것에 불만족하여 아름다운 앵무새를 찾아 아름다워서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아름다움은 공작새를 따라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동물원에 갇혀있는 공작새를 찾아가 너는 아름다운 털과 꼬리를 가지고 있어서 좋겠다고 부러워했다. 그러자 동물원에 있는 공작새는 나는 이렇게 갇혀서 사람들 앞에서 꼬리나 펼쳐 보여야 하지만 너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냐고 말하면서 나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까마귀 네가 부럽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 하면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가진 것에 늘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기의 부족한 것만을 생각하며 낙심하고 원망하는 삶이 아니라 가진 것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아 즐거움과 행복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의 소비는 늘어났지만 생활은 더 가난해졌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 식구는 더 적어졌고 삶은 편리해졌지만 여유시간은 더 짧아졌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가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삶의 의미를 찾는 법은 상실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들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뀐 것 같지만 인간은 여전히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모든 사람의 입에서 사랑을 말하고 행복을 말하지만 행복은 점점 우리에게서 멀리 떠나있는 것만 같다.
오늘 성경에서 보면 행복을 말하고 있다. 본문에는 복 있는 사람을 말하고 있는데 이 복이라는 단어가 헬라어 원문 성경에 보면 행복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마카리오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3절 말씀을 원문 형태로 보면 행복하여라. 심령이 가난한자에게는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되어 있다. 3-10절에 걸쳐서 계속해서 행복하여라 라며 축복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계시기에 말씀을 통하여 행복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지는가를 살피며 우리의 삶에서 진정한 행복을 얻어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1. 행복은 우리의 처한 환경에 있지 않다.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사람들은 행복을 좋은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좀 더 큰 아파트 평수 그리고 어떤 지역에 있는 아파트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얼마를 버느냐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얼마나 예쁘고 얼마나 잘났는가에 관심이 집중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주어진 환경들이 나의 행복을 좌지우지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행복한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며 애통하는 사람 또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라고 말씀한다. 3-10절에서 8번이나 행복하여라 라고 축복하면서 이러 저러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먼저 본문 3절에서 복이 있는 사람은 다른 많은 것들을 소유했거나 누리는 사람이라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한다. 다시 말하면 행복은 어떤 환경에 처했을 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서 행복 하다고 말씀한다.
‘베아티투도’라는 라틴어는 행복을 뜻하는 단어로서 ‘베오’는 행복하게 하다는 뜻이고 ‘아티투도’는 ‘태도나 자세, 마음가짐’을 의미한다. ‘태도나 마음가짐에 따라 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다. 인생은 10%의 사건과 그것에 대처하는 90%의 태도에 의해 좌우된다는 말이 있다.
노예라는 상황 속에서 철학자가 된 에픽테투스는 인간은 사물로 인하여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인하여 고통 받는다고 말한다. 똑같은 풀을 먹어도 뱀은 독을 만들고 젖소는 우유를 만들어 낸다. 같은 고난을 겪어도 한 사람은 시인이 되고 한 사람은 폐인이 된다. 신앙인은 고난이 면제된 사람들이 아니라 고난을 맞이 하는 태도가 다른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행복은 결코 우리의 처한 환경에 있지 않다. 내가 어떤 환경에 사느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하느냐 에 있지 않고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처한 환경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자기 정체성 확립에 따라서 행복이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행복을 말씀하시면서 결코 행복한 환경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러 저러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행복의 고정 관념을 과감히 깨뜨리고 바꿀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행복이 환경에 있지 않다면 과연 어디에 있는가?
2.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진 자에게 주어진다.
본문 3-5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본문 전체의 내용도 동일하지만 시간 관계상 3-5절의 말씀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고 복 있는 사람은 애통하는 사람이고 온유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전체의 말씀 속에서 나타내고 있는 핵심이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맺혀진 사람의 구체적 상태를 말씀하고 있다.
심령이 가난하면 왜 복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이 천국을 주시기 때문이다. 애통하는 자는 왜 복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이 위로해 주시기 때문이다. 의에 주린 자는 왜 복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이 배부르게 채워 주시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체는 복이 아니고 애통하는 것이나 역시 굶주림 자체도 복이 아니다. 자기에게 주어지는 삶의 환경의 조건은 부족하고 연약하여서 그것을 바라보면 실망할 수밖에 없고 원망과 짜증이 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자기 앞의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오히려 행복함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전능하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만드셨고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다.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이기 때문에 그의 모든 행사가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리 인간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셔서 우리들에게 모든 필요한 것들을 허락하신다.
이렇게 모든 복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오는 복이다. 다시 말하면 참 행복은 하나님에게서 온다. 창조주 하나님이야 말로 우리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실 수 있다.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소용 되는대로 더 하여 주시기도 하신다.
하나님은 그것을 누구에게 주시는가 하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에게 주신다.
3.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겠는가?
요 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믿는다는 것은 영접한다는 것이다. 영접한다는 것은 내 마음에 모셔 들이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셔 들이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맺어지게 된다.
세상에서도 가장 가까운 사이는 역시 부모 자녀의 관계다. 부모는 자기 자녀의 필요뿐만 아니라 원하지 않아도 좋아 보이는 것들을 다 사준다. 내리 사랑이라고 조부모들이 자기 손주들에게 하는 것을 보면 엄청나다. 하나님도 자기 자녀 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라든지 있어야 할 것들에 대해서 다 채워 주신다. 이 땅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해도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어린 자녀가 어떤 문제 앞에 전전긍긍할 때 부모는 다 도와준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보다 더한 능력이 있고 자기 자녀 된 사람들에게 각종 은혜와 복을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문제는 바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그 은혜를 확신하며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셔 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가운데 마음의 평안과 삶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가운데 생활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진정한 행복은 세상의 어떠한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아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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