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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2025-12-23 10:24:36
사무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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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9:4-7

251221주일낮설교

며칠 있으면 성탄절이다.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 특별히 성탄절은 기다려지던 절기였다. 함께 모여서 교회 성탄 장식도 하고 성탄 이브에 성탄 축하 예배를 드리며 성극도 하고 끝나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부서대로 함께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다가 새벽 송도 돌고 주신 과자들을 기관별로 나누고 수고한 사람들에게도 주면 그것을 기쁨으로 먹으며 즐거워했던 것은 예수님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성탄절이 많이 퇴색되어 어린아이들이나 어른이나 그저 지나가는 절기로 지키고 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에 아기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예언한 말씀이다. 기원전 300년이 우리나라로 치면 고조선이다.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나라 삼국시대 초기다. 700년 전의 예언이 700년 후 그대로 성취되었다.

 

예수님에 대해서 구약에는 350여 가지의 예언이 있는데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몇 가지로 말씀하고 있다.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먼저 그의 어깨에 정사를 메었다. 정사는 어깨에 맨 열쇠로 세상을 다스릴 통치권을 말한다. 죄와 죽음의 노예에 놓여 있는 인간에게 해방과 참 자유를 주시기 위한 통치권을 가지고 오신 메시아임을 말씀한다. 그러면서 그의 이름은 기묘 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는 것이다.

(1) 기묘 자는 '구별하다' '뛰어나게 만든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적을 통하여 크고 놀라운 것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경험과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놀라운 능력과 방법으로 사람들을 절망에서 구속해 주실 것이다.

(2) 모사는 위대한 모사로 메시아께서 모략과 재능의 신을 받으신 분으로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구속 사역을 감당하실 분이심을 표현한 것이다.

놀라운 지혜와 자질을 가지고 인생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지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3)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앞으로 태어날 아기가 신성과 인성을 공유한 메시아이심을 나타내 주는 표현이다.

(4) 영존하시는 아버지에서 아버지는 성부라는 뜻이 아니라 아버지처럼 자애로우신 분이라는 뜻이다.

앞으로 태어날 한 아기를 영원한 아버지로 표현한 것으로 장차 오실 메시아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창조하셨고 구속하실 영원한 아버지이심을 밝혀 주는 말씀이다.

(5) 마지막으로 평강의 왕이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르샬롬은 전쟁이 없는 평화의 상태를 나타내는 이름으로 평강은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함과 평안한 상태를 나타낸다.

5절에서 말하는 전쟁터의 군인들의 신발과 피 묻은 옷을 불살라버린다는 말씀처럼 메시아는 세상에서 분쟁을 잠재우고 관계를 회복시키며 평강의 세상을 만들 것 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실 때 천사가 이렇게 선포했다.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평화를 주시는 분이신가?

 

1.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누리게 하시기 위해 오셨다.

1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이유는 바로 화목제물이 되시기 위해서이다. 화목제물로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원수 된 관계를 허무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친히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셨다.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 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 전에 관계가 불화했음을 말한다. 우리는 죄인이어서 죄를 가지고는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없었기에 죄인 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불화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용서 받게 되었고 의인 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되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로 인해 깨어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말한다.

1:20 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은 온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길을 여셨다.

예수님은 단순히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구원자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평화를 선물로 주신 화목의 중보자이심을 믿기 바란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영원한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불화한 관계이거나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딤후 4:16-17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내가 처음 변명할 때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히게 되지 그를 따랐던 제자들이 바울을 떠났다. 그러나 17절에 사람들은 자기를 떠났을지라도 주님은 자기 곁에 계셔 떠나지 않고 함께 하심을 확신 하고 있다. 믿을 수 없는 것에 기대를 걸기보다는 우리의 확실한 보증이 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제든지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여기 있다 염려하지 말라고 우리를 다독이시고 위로해 주시는 줄 믿기 바란다. 나를 떠나지 않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2) 인간관계의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셨다.

 

9:4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압제자의 멍에와 채찍과 막대기를 꺾고 해방을 주신다는 것이다.

7절에서는 공평과 정의가 있는 평화를 주신다고 말씀한다.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정의는 올바른 것이고 공의는 누구에게도 편벽과 편애가 없이 다 골고루 바르게 대하는 것이다.

정의가 없으면 평화가 없다. 올바른 것을 올바르게 하지 않으면 거기에 불평과 갈등이 생기고 평화가 깨어진다. 공의가 없어도 평화가 없다. 설령 올바른 것을 올바르게 한다고 해도 남이 할 때는 비난하던 행위를 자신이 할 때는 합리화하는 내로남불식 하는 태도라고 하면 금방 대립과 다툼이 생긴다. 그런데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진정한 평화를 주신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정의와 공의로 구별 없이 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관계의 벽을 허무시고 인간관계에 평화를 주셨다.

2:14-16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과 이방인 간에는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은 이 모든 적대감을 다 허물고 그들 사이에 평화하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세워진 초대교회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이나 자유 자나 종이나 남자나 여자의 모든 관계가 다 허물어져서 하나가 되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 가운데 서로 벽이 허물어지고 하나가 되기를 원하신다. 서로 자기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세상이지만 교회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중심으로 벽이나 격이 다 허물어지고 감정이나 편견이 없이 모두가 하나가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 가운데 다른 사람을 향하여 아직도 앙금이 남아 있거나 감정이 해소되지 않았다면 이번 성탄절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하나가 되는 우리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모습이나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면서 우리의 사회나 국민 간에 하나 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기며 비난해서는 안 된다. 사회를 위해서 기도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모습 속에 하나 되지 못하고 반목과 질시 속에 있는 우리 가정과 교회와 우리 성도들의 관계 회복을 위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이 우리의 하나 된 평화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기억하며 하나 되기를 힘쓰는 우리 모두 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느 날 저녁 성자 프란시스 집에 누군가가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프란시스가 나가보니 험상궂게 생긴 한센병 환자였다. 그는 몹시 추우니 잠시 방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프란시스는 그의 손을 잡고 방으로 안내했다. 이 환자는 다시 저녁을 함께 먹도록 해 달라고 청했다. 두 사람은 같은 식탁에 앉아 함께 저녁을 먹었다. 얼마 후 밤이 깊어지자 다시 부탁을 한다. 너무 추우니 알몸으로 자기를 녹여 달라는 것이다. 프란시스는 옷을 모두 벗고 자신의 체온으로 한센병 환자를 녹여주었다. 이튿날 아침 프란시스가 일어나 보니 그 환자는 온데간데없었다. 환자가 왔다 간 흔적조차 없었다. 프란시스는 그제야 모든 것을 깨닫고 비천한 자신에게 찾아주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의 기도는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라는 기도였다. 하나님의 평강이 머무는 사람은 영원한 평화의 도구로 세상을 살게 된다.

주님으로 말미암는 평강 여호와의 선물인 평강이 늘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머물고 이 평화를 세상에 전달하는 평화의 도구로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우리 모두 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 주님의 평강의 복이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이 민족 위에 충만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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