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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플랫폼(15) 목표를 향한 열정적인 삶
2025-10-25 09:04:09
사무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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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플랫폼(15)

목표를 향한 열정적인 삶

3:12-16

251019주일낮설교

주님의 기쁨이 당신에게 서로 축복하며 인사하기 바란다.

김봉준 작가가 쓴 온 세상에서 끌어 모은 감동이라는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어렸을 때의 운동회 경기 중에 장애물 경주가 있었다. 두 명의 선수가 있었는데 한 아이는 육상선수였고 또 다른 아이는 키가 가장 작은 아이였다. 신호음과 함께 육상선수인 아이는 당연히 먼저 뛰어나가 사다리를 통과하고 뜀틀을 뛰어넘어 가마니까지 뒤집어쓰고 1등으로 뛰어 마지막 관문인 쟁반 위의 밀가루에 놓인 접힌 종이를 입술로 물었고 접힌 종이를 펼치는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 접힌 종이엔 할머니라고 쓰여 있었다. 결국 뛰지 못하는 할머니 손을 붙잡고 걸어서 결승점에 들어와야 했다. 그러나 키가 작은 아이가 선택한 종이에는 체육선생이라고 써 있었다. 선생님 손을 잡고 뛰는 아이의 걸음이 늦으니까 체육 선생은 아이를 업고 뛰어 들어와 결국 이겼다. 인생이라는 경주도 많은 장애물과 고비가 앞에 놓여 있어 내 마음대로 안 된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뛰는 경주라면 예수님께서 내 손을 잡고 뛰시다가 내가 시원찮으면 나를 업고 뛰신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께 우리의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인생 경주에서 앞으로도 계속 달려야 한다. 그러나 그 길이 예수님과 함께라면 어디를 가든 걱정할 건 전혀 없다.
사도 바울은 우리 인생을 달리기 경주에 바유해서 표현하고 있다. 달리기 경기에는 시작점이 있고 마지막 도착점이 있다. 시작점은 조용하게 시작되지만 마지막 결승점에는 요란함과 더불어 환한 웃음과 아울러 안타까움이 교차되는 곳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언제 시작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지만 뛰고 있는 과정이 중요하고 결승점에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고 있는 본문에서도 자기의 모습을 경주자로 비유하고 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있으면서 인간적인 나이도 꽤 되었다. 오늘날의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의 평균 수명이 3-40세 정도 였다. 물론 당시에는 영아 사망률이 많아서 평균 수명 율이 낮아졌고 당시에 60세를 넘겨서 사시는 분들도 많았다. 하지만 60이 되면 하는 환갑잔치를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2천 년 전의 바울 당시에는 그 보다 더 낫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울이 순교한 것이 주후 67-8년으로 보면 주후 5년에 출생한 바울은 62-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빌립보서를 61-2년 정도에 썼다고 하면 감옥에 있던 때는 바울이 나이가 많았다.

환경도 언제 풀려날지 모르는 암담한 상황에 놓여 있었지만 바울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아니라 아직 달려갈 길이 남아 있는 미완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본문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고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니기에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12절에서 고백하고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나이나 상황을 바라보면서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인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열정을 가지고 달려가는 인생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본문의 말씀을 통해 살펴보며 주시는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1.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열정을 쏟아부어야 한다.

 

본문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에게는 그의 인생과 사역에 있어서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그것을 본문에서는 푯대라고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푯대라는 원어적인 의미는 멀리 있는 표적이나 시야 속에 있는 목표를 말하지만 바울에게 있어서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바로 이어지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바울에게 있어서 그의 인생의 최고의 목표는 세상에서 잘되는 것이거나 많은 재물을 모으는 것이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기 이름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었다.

어떤 사람은 천국의 상급에 대해서 천국에는 차등적인 상급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천국 들어가는 그 자체가 상급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상급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하늘의 상급을 말씀하신다.

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사도 바울도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면서 결코 한눈도 팔지 않고 전념했던 것은 자기에게 주어질 상급이 분명이 있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도니라.

로버트 클린톤 이라는 사람이 쓴 책에는 지난 날 크게 성공적으로 살아온 여덟 명의 영적인 지도자들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면서 그들에게 있었던 한 가지 공통점은 그들의 삶에는 분명한 초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천국 상급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부르심의 상급을 바라보고 믿음의 경주를 해야 될 줄로 믿는다.

그런데 단지 목표만 세우고 그것을 바라보기만 하면 상급이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열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바울은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에 달려간다고 고백하고 있다. 달려간다는 것은 어슬렁거리는 자세로 슬슬 조깅하는 것이 아니다. 단거리 육상 선수들 가운데 특히 100M 단거리 선수는 100M를 뛰는데 불과 10몇 초 안에 들어오는데 그동안은 숨을 멈추고 단숨에 뛰는 것이다. 좌우를 돌아보거나 숨을 쉬면서 여유 있게 뛸 수가 없다. 앞에 있는 목표를 바라보며 결코 한 눈 팔지 않고 전력 질주하는 자세를 말한다.

21번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무엇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하면 최소한 21번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군 조종사가 모의 훈련을 몇 번 하는 것이 실전에서 가장 효과적인가를 알기 위한 조사에서 나온 법칙이다. 처음에는 잘 안 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반복하다 보니까 성공할 수 있었는데 한두 번의 실수가 아니라 아무리 못해도 21번의 과정을 겪으니까 가능하더라는 것이다.

각계에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서 조사한 결과 공통적인 성공비결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길을 걷는데 적당하게 시간을 낭비한 것이 아니라 열정을 가지고 임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열정의 모습을 본문의 바울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다. 바울의 성공적인 삶의 자세는 바로 목표를 바라보며 열정적으로 도전한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 바로 열정적인 자세로 자기에게 주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목표를 세워도 열정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적당히라는 말은 사탄이 우리를 미혹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열정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기 원하신다. 사탄의 속삭임에 현혹되지 말고 주의 부르심에 합당한 심령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불필요한 과거는 잊어버려라.

 

본문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불필요한 과거라고 하니까 과거의 잘못된 일들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잘한 것들은 자랑거리로 남겨두라는 말로 오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불필요한 과거라는 것은 과거의 잘한 것이나 잘 못한 것들을 다 포함하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올 한 해의 삶이나 지금까지 지내온 삶을 돌아 볼 때에 살면서 잘한 것도 있고 잘하지 못한 것도 있다. 잘한 것에 집착하면 자랑거리가 되어 그것이 우리를 우쭐거리게 만든다. 반대로 잘하지 못한 것에 집착하게 되면 올무가 되고 장애 물 이 되어 자꾸 움추려지며 의기소침해 진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이고 과거적인 것은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다 포함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에서 늘 원망과 불평을 일삼았다. 그것은 현재의 삶의 상황과 다른 과거의 애굽 생활을 떠 올리며 과거의 추억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16: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부터 불평을 달고 살았던 사람들은 아니었다.

15장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홍해를 건넌 후에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고 이어서 아론의 누이 미리암의 찬송이 이어진다. 그러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갑자기 돌변하여 원망과 불평의 화신이 된 것은 출 16:3절에서 나오듯이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서 고기를 먹었고 떡을 배불리 먹었다는 과거의 생각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바울도 자기의 과거에 집착했더라면 결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지난주에 바울의 육신적인 자랑거리에 대해서 살펴보았지만 바울도 자랑거리가 많았기에 그것들이 바울의 나가는 길에 올무가 되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바울에게는 뼈아픈 과거도 있었는데 알지 못하고 유대교에 열심인줄 알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오려고 다메섹으로 의기양양하게 내려갔던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의 삶이 180도 바뀌어 예수님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 과거 예수 믿던 사람들을 핍박하고 괴롭혔던 것이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는 바울에게 있어서 얼마나 낯 뜨겁게 만들었겠는가?

그래서 바울은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잊어버렸고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도 과거에 매이지 않기 위하여 과거를 잊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꾸 과거에 매여서 옛날 생각만 하면서 나때는 이라는 말을 반복한다. 나때는 카페에 가서 커피 시킬 때나 사용하고 평상시에는 들먹이지 말기를 바란다. 과거 지향적이 아니라 미래적인 것을 계획하며 계획한 것을 이루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기울이시기를 바란다.

나이가 든 사람들 중에는 나이든 사람들의 모임에는 나가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유는 자꾸 옛날 이아기만 하고 병과 약 먹는 이야기만 하기 때문이다. 몸이 불편하면 병원에 가서 의사의 처방을 들어야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나 유튜브에 의존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이에 관계없이 자꾸 과거지사에만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향하여 나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신앙인으로 바울이 바라보았던 부름의 상을 얻기 위하여 남은 시간 믿음의 열정을 가지고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란다. 뒤에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삶이 될 때 우리의 삶은 무미건조 해지는 것이 아니라 힘차고 활력이 넘치게 될 줄로 믿는다.

이러한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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