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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고 싶은 교회(2) 환난 가운데서도 빛을 발하는 신앙
2026-01-20 09:07:03
사무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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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고 싶은 교회(2)

환난 가운데서도 빛을 발하는 신앙

살전 1:2-4

260118주일낮설교

서양 속담에 행복은 언제나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감사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야 감사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성경적으로 보면 닭이 먼저다. 마찬가지로 감사와 행복 중에서 감사가 먼저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복한 인생을 살려면 마음에 늘 감사가 있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프랑스 물리학자 파팽은 날마다 주시는 일용할 양식과 몸의 건강과 영원한 삶을 향한 소망으로 감사한다고 했는데 유대인들은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무조건 감사하고 원망하는 사람과는 교제하지 말고 감사하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라고 가르쳤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감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감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프랑스 물리학자는 자기에게 일용할 양식과 몸의 건강 때문에 감사 했다.

이것은 조건적인 감사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감사는 그보다는 더 나은 무조건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성경의 가르침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는데 범사는 좋은 일이나 아니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든 부분에서 감사하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전도 받고 구원받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믿음 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감출 수 없는 기쁨 가운데 감사하며 그들을 기억하며 기도한다고 고백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그들의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대견해하고 응원해 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마음에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관대한 마음을 갖기보다는 편협한 마음을 가지고 경쟁 상대로 보면서 남이 잘되는 것에 대해서 꼬투리를 잡고 흠집을 내려고 한다.

 

본문 말씀에서 바울이 감사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며 우리의 삶에도 나의 환경에만 집착하여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들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어려움에 함께 눈물 흘리고 기뻐하는 일로 함께 즐거워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그들이 잘됨으로 함께 기뻐하고 신앙이 잘 성장하는 모습으로 하나님께 감사 찬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려움 가운데 시작했고 그 박해는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생각하면서 걱정과 염려가 있었지만 박해 가운데서도 흔들림 없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소식은 바울의 모든 걱정을 떨쳐버리기에 충분했다. 박해 가운데서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꿋꿋하게 가지고 있었던 신앙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를 살펴보며 오늘 우리의 신앙의 모습에 있어서 본으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

 

1. 믿음의 아름다운 삶이 따랐다.

 

살전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신실한 믿음이라고 할 때에는 단순히 믿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참믿음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믿음과 사랑 소망이라는 세 가지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장은 사랑 장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사랑을 강조하고 있기에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본문에서 참믿음에 들어있는 세 가지 요소 중에 먼저 언급하고 있는 것이 바로 믿음이고 믿음을 말하면서 같이 쓰고 있는 단어가 역사라는 말이다.

역사는 일이라는 의미로 믿음에 따르는 일이라는 말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내적인 부분이기에 믿음이 있다거나 없는 것을 표현 하기가 애매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내적 믿음은 외적 행위로 표현되어야 한다. 믿음이 있는 경우에 말로만 나는 믿음이 좋다고 말하거나 가지고 있는 성경 지식을 말로만 서술하는 것이 참된 믿음은 아니다. 물론 성경 지식이나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자체가 전부는 아니다. 머리로만 알고 있는 지식적인 믿음은 귀신도 가지고 있는 믿음이다.

5: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이때는 예수님의 사역의 초기라서 제자들도 예수님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지 못했던 때이지만 이미 귀신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지식적인 믿음은 열매 맺는 참된 믿음이 아니다. 4장에 보면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며 그 의미에 대해서 뿌리는 것은 말씀을 뿌리는 것인데 말씀이 길가와 돌밭과 가시덤불 가운데 그리고 좋은 땅에 뿌려졌다.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진 마음 밭이 옥토가 되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지 돌밭과 가시덤불에 떨어진 말씀의 씨는 자라는 것 같은데 돌이나 가시덤불이 기운을 막아서 자라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 말씀에 근거하여 얻어진 참된 믿음이 있을 때 그에 반응하여 아름다운 신앙 행위가 나오며 그로 인해 열매를 맺힌다.

말씀을 어설프게 알거나 그저 오랫동안 교회 생활한 사람들은 보고 들은 것이 있어서 어설프게 아는 지식으로 남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당시 바리새인들이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로서 말씀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믿음이 있는 사람처럼 인정 받았지만 예수님께 책망을 들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신앙을 외식하는 신앙이라고 지적하셨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고 책망하셨다.

믿음을 말로만 드러내거나 믿음이 있는 척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합당한 행위로 각자의 믿음을 온전하게 들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요즘은 식후에 커피 한잔은 기본인 것 같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카페에 들러서 커피를 주문하여 추운 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을 들고 길을 건너는 젊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커피콩에서는 별 향기가 나지 않는데 갓 볶은 커피콩을 분쇄하면 커피의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한다. 커피 향기를 머금고 있다가 콩이 분쇄되면서 그 향기가 드러나게 된다.

우리의 믿음도 우리 속에 가지고 있는 믿음이 아름다운 향기를 드러내며 합당한 믿음의 삶으로 풍성하게 드러날 수 있기를 바란다.

 

2. 사랑에는 합당한 수고가 따른다.

 

본문 3절에는 사랑의 수고 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은 믿음과 본질적으로 다른 요소가 아니라 믿음의 다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믿음이라는 말을 사랑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뜻이 바뀌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랑에도 역시 행위가 따를 때 온전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은 우리 마음 속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우리의 마음으로 하지만 결국 우리의 행위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랑은 인간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동식물을 키우는 사람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역시 나타나야 하는 모습이다.

대화하는 가운데 한 권사님이 외국에 있는 자녀의 가정에 김장 김치를 보내주었다는 것이다. 김치를 포장해서 보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전에 김치를 보냈다가 현지에서 퇴짜를 맞아 반품되어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번거로워서 집 근처에 가서 포장되어서 파는 한국 김치를 사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 손주가 하는 말이 자기는 할머니 김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하면서 김치만 있으면 밥을 세 공기라도 막을 수 있고 된장이나 청국장도 맛있다고 말을 했다. 그 말이 마음에 밟혀서 다른 방법으로 김치와 청국장을 보내주었다는 것이다. 잠시 옆집에 갖다주는 것도 아니고 멀리 외국에 나가 있는 가정에 보내기 위해 서울까지 가서 복잡한 방법으로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면 절대 불가한 일이다. 그러나 사랑을 하니까 내가 힘든 것은 다 감수하고 그저 사랑하는 대상이 즐거우면 나는 만족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랑의 표현이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찬양은 열심히 하고 아멘은 잘하는데 교회를 위하여 주를 위하여 시간을 내고 힘을 좀 쓰라고 하면 바쁘고 힘들고 이런 핑계 저런 이유 들로 빼는 것은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에게 사랑한다고 입으로만 고백하지 말고 우리의 수고를 통하여 사랑을 증거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하는 모습을 통하여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귀한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3. 소망이 전제된 인내가 가치 있다.

 

참된 믿음의 요소 가운데 소망이 있는데 이 소망에는 인내가 동반된다. 고난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는 말이 있다. 고난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나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이나 삶에서 다 동일하게 나타난다.

참을 인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는 세상 속담도 있을 정도로 세상에서도 인내를 강조한다. 세상에서의 인내는 어려움을 당할 때 그저 참는 것을 말한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겠지 하는 막연함으로 기다린다. 저 사람은 참을성이 많다느니 아니면 적다느니 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인내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막연한 심정으로 기다리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기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어려움이 왜 주어졌는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주권하에서 아무 의미 없이 주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믿기 바란다.

 

성경은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일들도 하나님께서는 그저 지켜만 보시고 방관하지 않는다는 것을 또한 믿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왜 주어졌는가를 생각하기보다는 내게 닥친 이 불행을 내가 어떻게 견디고 이겨야 할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언제 이 고난이 끝날지는 몰라도 이것을 믿음으로 잘 견디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와 영광으로 인도하여 주실 줄 믿는다.

 

그러므로 크고 작은 환난을 만날 때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를 영광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참된 믿음에는 단면적인 요소가 아니라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라는 요소가 복합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 온전한 믿음으로 신앙에 승리하는 모든 성도 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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