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감사는 수준 높은 신앙의 자세
골 3:15-17절
250706맥추감사주일낮설교
어느 교회 목사 사모님의 간증이다. 위암에 걸려 신촌세브란스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개복을 해서 보니까 암세포가 너무 많이 퍼졌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대로 닫고 봉합했다.
담당의사가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는데 이렇게 권유했다. “사모님, 의료적으로 더 이상 할 게 없습니다. 인생을 정리하면서 노트에 감사했던 것들을 기록해 보세요.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사모님이 처음에는 낙심이 되어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차피 떠날 인생이라면 그것도 의미 있겠다 싶어 생각하며 하나씩 쓰기 시작했다. 1)예수님 믿게 된 것, 2)본래 못된 성격인데 목사 사모가 되어 교인들 사랑할 줄 알게 된 것, 3)아이들이 신앙 안에서 건강하게 잘 자란 것. 이런 식으로 쓰다 보니까 며칠 만에 백 여 가지를 기록하게 되었다. 담당의사가 오더니 그렇게 많이 썼느냐며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제는 그만 써도 된다며 퇴원시켰다. 집에 갔는데 감사 노트를 쓰는 게 좋아서 계속 기록했다. 그러다 보니까 기쁨이 샘솟았고 기력이 생기는 것 같아 기도하기 시작했고 심방이나 전도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갈수록 얼굴색도 좋아지고 광채가 날 정도가 되었다. 식사 양도 늘어 정상적인 식사를 했지만 혹시 무리를 해서 악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어 교인들은 은근히 걱정했다. 그런데 몇 달 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담당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사모님, 기적이에요. 다 나았어요!”
서양 속담에 “행복은 언제나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감사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행복해야 감사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와 같다. 성경적으로 보면 닭이 먼저이듯이 감사와 행복 중에서 감사가 먼저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복한 인생을 살려면 마음에 늘 감사가 있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감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조건이 좋은 사람이거나 윤택한 삶을 산다고 감사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큰 은혜를 받았다고 누구나 다 감사하는 것도 어니다.
눅 17:11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로 지나가시다가 열 명의 나병환자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을 고쳐 주셨다. 당시 나병은 저주받은 병이고 불치의 병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 불치병에서 나음을 입었음에도 자기들에게 새로운 삶이 주어졌다는 기쁨 때문에 예수님께 와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아홉 명은 다 제 길로 갔고 한 사람만 돌아와서 감사했듯이 감사의 조건이 있고 큰 감사를 받았음에도 모두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은혜를 입고서 은혜 받은 것에 감사는커녕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로 지키며 전반기의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 감사하는 주일로 지키자고 말씀 드렸다. 이 말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슴에 새기며 감사한 것을 헤아려 보았는지 모르겠다.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서도 감사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는 말씀을 살피며 우리의 삶에 마지못해 겨우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가 넘치는 귀한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1. 진정한 감사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본문 15절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표준 새 번역 성경.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도록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본문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평화 즉 주님의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여 마음에 평안을 누리며 더 나아가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성경은 어느 시대를 말하고 있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은 국내외적으로 다 힘들다고 아우성치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만 그 가운데서 마음의 평안을 누리며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겠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태초 이후로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에는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고 문제가 없었던 때도 없었다.
아담과 하와가 살던 곳은 에덴으로 파라다이스 즉 천국 같은 곳이었다. 아무런 부족함이나 문제가 전혀 없는 곳이었지만 하와의 마음에 욕심이 들어갔고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에 미혹되어 죄를 범하였다. 그 후로 아담의 자녀인 가인과 아벨 형제간에 살인이 자행되었고 가인은 도망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오늘 우리의 삶의 모습과 비슷한 양상을 이루며 살아오고 있다.
본문의 골로새교회를 향해 편지하고 있던 시대도 역시 초대교회로 신앙생활에 많은 핍박과 어려움이 있었다. 일상의 삶에 있어서도 경제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면서 주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로 고통과 각종 문제 가운데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골로새 교회라고 편안하고 아무 문제없는 온실 속에 자라는 꽃들처럼 평탄하지는 않았다. 사도 바울은 힘든 상황에 있는 골로새 교인들을 향하여 성도들의 삶을 그리스도의 평안으로 지배하게 하고 또한 삶 속에서 감사하며 살라고 권하는 말씀은 골로새 교회 뿐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말씀이다.
그러면 불안과 염려가 가득하고 감사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평안을 누리고 감사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우리로 평안하게 하고 감사할 수 있는 삶의 조건이 무엇인가를 찾아서는 안 된다. 우리의 환경이 아무 문제없어서 평안하고 감사 할 수 있는 조건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형편이나 환경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나 감사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생각의 차이다. 이것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 넘는 것으로 믿음의 문제다.
상식이 통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고 상호간에 교류가 이루어 질 때를 말한다. 지극히 상식적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나가 다 동의 할 수 있는 상황을 말한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것은 다 동의하는 것으로 상식적이다. 물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른다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말한다.
신앙은 비상식적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상식적이지만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은 비상식적인 것으로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그런데 감사는 믿음의 사람만이 감사의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는 은혜라는 찬송을 좋아한다. 그 가사 가운데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사는 것/ 어린 아이 시절과 지금까지 숨을 쉬며 살며 꿈을 꾸는 삶을 생각 할 때/ 우리의 생각으로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따지고 보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고백 할 때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상식적인 수준으로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을 열어주셔서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어 매사에 감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상식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우리의 모든 삶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진정한 감사는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의 감사다.
본문 17절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이름과 주님을 힘입어 감사하라는 것은 주님을 힘입어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이다. 주님을 힘입어 감사하는 것은 주님이 행하신 것처럼 모든 일에 있어서 감사해야 한다.
주님이 행하신 감사는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행한 감사였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예수님의 낮아지심이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존재들의 영광과 찬송을 받으셔야 마땅한 분이셨는데 성부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행하시기 위하여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명확하게 보여주신 것이 구유에서의 탄생이었고 육신을 입고 사셨던 33년의 삶의 모습이었다. 공생애 3년 어간의 삶에서는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하셨고 식사할 겨를도 없이 밤늦게까지 찾아오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그러한 삶 속에서 예수님은 결코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으셨다. 그러면 어쩔 수 없어서 포기 하고 사셨는가 하면 그것이 아니다.
벳새다광야에 모인 오천여명의 군중들이 허기질까봐 걱정하신 예수님께서는 한 어린아이가 가지고 온 작은 보리빵 5개와 작은 생선 두 마리를 받으시고 하나님께 감사하셨다. 그리고 기도하신 후 나누어 주게 했다.
눅 22:17절 이하에 보면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식사로 빵과 포도주 잔을 가지고 식사하시며 주님은 감사기도 하셨다. 주님은 감사할 수 없는 상황 임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잊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범사에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 감사할 수 없는 조건임에도 감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언 듯 생각하면 광신적인 신앙인이라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성도들에게는 언제나 감사가 따르는 생활이어야 함을 말한다. 감사가 없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물질만능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기억해야 할 것은 풍족한 물질의 소유만이 참된 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물질의 풍족함이 결국 인생의 최대 행복으로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머니 머니 해도 머니가 최고라고 하면서 돈을 모든 것의 가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물질의 부유함은 복이고 그러므로 감사할 수 있고 물질의 부족함은 불평과 짜증으로 여기고 있다.
참된 복은 평안과 기쁨이고 평강과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께로 오는 줄 믿기 바란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 아니면 우리에게 참된 평강과 기쁨일 수 없다. 아무리 많은 물질을 소유했을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욕망과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마음이 가난한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한다. 가난한것은 부족한 것을 말하는데 마음이 가난한것은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하나님이 부족한 것을 의미한다. 부족함을 느껴야 필요를 채우려고 애를 쓴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어서 하나님의 임재의 부족함을 느낄 때 그 심령은 하나님을 구할 수 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을 갈급해 하는 심령이고 부족한 심령에 하나님을 갈망할 때 하나님이 그 심령에 함께 하시는 줄 믿기 바란다. 그 마음 가운데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지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안의 삶을 살 수 있고 그 마음에 한없는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게 되는 줄 믿는다.
세상적인 것으로 채우지 않아도 하나님으로 채워진 심령은 늘 감사할 수 있고 즐거워 할 수 있다.
세상적인 조건으로 볼 때 전혀 감사할 수 없고 기뻐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하나님이 그 심령을 주장하시면 늘 감사와 평안으로 삶에 활력을 얻고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을 줄 믿는다.
믿음의 눈으로 우리의 모든 것들을 판단하며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가 넘치는 귀한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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