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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플랫폼(7) 그리스도인다운 생활
2025-08-23 11:23:48
사무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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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플랫폼(7)

그리스도인다운 생활

1:27-30

250817주일낮설교

주님의 기쁨이 당신에게 옆 사람에게 축복하기 바란다.

오늘의 시대를 말한다면 위기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날씨가 예년보다 훨씬 더운 날이 많아진 것 같고 폭우가 쏟아지는데 매년 내리는 비의 양이 아니라 몇 백 년 만에 내린 폭우라고 말하기도 한다. 서울에서 바나나가 재배된다는 말도 있고 바다의 물고기들도 우리나라 근해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상어가 나타나 해수욕장에 안전 펜스를 치기도 한다는 소식을 듣기도 한다. 저 출산으로 인구 감소 위기상황을 말한다. 새로운 아파트 단지에는 기존 학교의 학급 수 증설을 위한 증축도 이루어지지만 많은 지역의 학교들은 폐교가 되거나 학급 수나 학급의 학생 수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세상에서뿐 아니라 종교계에도 발생하고 있다. 다른 종교는 넘어가고 우리 기독교만 보아도 교회의 위기 상황을 말하고 있지만 교회의 위기 역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없었던 때는 없었다. 늘 있어온 이야기지만 이런 문제가 이슈화 되면 따라서 자성의 목소리도 함께 나오지만 잠시의 논쟁으로 그치고 유야무야해 진다. 그러나 개혁 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돌이켜보며 늘 하나님 말씀 중심의 온전한 신앙의 모습을 가지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개혁의 대상은 특정한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 목회자나 성도들의 전체적인 부분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목회자의 입장에서 늘 돌이켜야 하고 성도들은 성도의 입장에서 바른 신앙의 가치관과 기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바르게 잘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의 모습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단점과 잘못이 무엇인가를 찾아내기 위하여 혈안이 되기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냉정하게 판단하며 돌이켜야 할 것이다. 교회의 개혁은 건물의 리모델링이 아니라 사람의 변화다. 사람이 변화되면 교회는 늘 새로워진다. 사람의 변화는 사람의 바뀜 즉 멤버 챈지가 아니라 믿는 성도들이 새롭게 변화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성도가 성도다워야 교회가 교회다워진다. 우리의 간절한 소원은 내가 부자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믿음이 부요한 신자 되기 원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찬송하며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간절한 뜻 인줄 믿고 이 일에 최선을 다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렸던 바울도 빌립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이와 같은 주님의 뜻을 선포하고 있다.

본문 27절을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다른 번역 성경에서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사람다운 생활을 하십시오. 라고 번역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사람다운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을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고자 한다. 본문에서 말하는 성도된 우리들을 향하여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가를 살펴보며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1.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한 마음으로 협력하라.

 

본문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바울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권하고 있다. 이 말의 배경적인 의미는 시민답게 생활하라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 자였다.

바울은 로마사람이 아니었고 유대인으로서 어떻게 시민권을 얻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면 많은 특혜가 있었을 것이고 어느 식민지 도시에 살든지 함부로 대하지 못했고 따라서 우월감이 가득했다. 따라서 로마 시민권자들은 특권의식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로마시민의식을 가지고 살았다.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것은 천국의 시민권자자 되었으니 시민답게 생활하라 는 것이다.

구원받아 천국 시민권자가 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몸이 곧 바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육체는 들어갈 수 없기에 육체를 벗어야 되는데 죽음을 통해 육신이 영혼과 분리되어야 영혼이 자유롭게 천국에 입성하게 된다. 그때까지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서 생활하는 동안 몸은 비록 이 땅위에 존재하지만 우리 신분이 천국 시민권자임을 인식하여 시민답게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이 되었기에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하면서 한 마음으로 협력하라고 권하고 있다. 협력하다는 원어의 뜻은 누구와 함께 싸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공격 대상을 향해서 우리는 원 팀이 되어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옆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다른 성도가 아니다. 옆에 있는 사람은 비록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내가 사랑해야 할 나의 영적 가족이요 형제자매다. 웬수같은 남편이나 속 썩이는 자녀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의 이웃도 아니다. 사람은 다 사랑해야 할 대상이지 싸움의 대상은 결코 아니다.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악한 영인 사탄과 그의 수하에 있는 귀신들을 말하는데 이것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영적 존재들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고 하지 말고 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영적인 눈을 뜨고 바라보고 믿어야 한다. 신앙생활은 영적 전쟁을 치르는 것이기에 우리의 적이 누구인가를 바로 깨닫고 강한 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대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우리 성도들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서로 협력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본문에서는 우리의 적인 사탄을 이기기 위해서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을 말하기 전에 먼저 기본적인 자세로 서로 같은 마음을 가지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탄의 속성은 분리하는 것이고 서로 나누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에도 사탄이 틈 탈수 있는데 그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서로 나누어 지는 것이다. 같이 신앙생활을 하던 옆의 성도가 어느 날 갑자기 싫어지고 미운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저 사람이 왜 그럴까를 생각하지 말고 내 마음에 사탄이 틈타서 노략질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안 보이던 결점과 단점이 나타나기 시작할 수 있다. 교회가 그 전에는 다 좋았는데 어느 순간 내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이 보이고 목회자에게서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며 좋아 보이던 사람들도 이상하게 내 맘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사랑에는 권태기가 있는데 결혼한 부부도 권태기를 잘 극복하지 못하면 서로 헤어지게 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도 사랑으로 맺은 관계이기에 권태기가 찾아오면 괜히 싫어지고 미워질 수 있다. 이때에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며 기도함으로 잘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교회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다른 교회를 찾아가도 처음에는 좋았다가 권태기가 찾아왔을 때 역시 극복하지 못하면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다. 세상에 완전한 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에 내가 들어가서 부족함을 채우고 연약함이 있는 곳에 그것을 잘 해결하여 하나가 되게하는 강력한 접착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 되는 일을 온전히 이루기 위하여 방관자나 이방인이 아니라 중심이 되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고난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아야 한다.

 

본문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 고난이나 각종 어려움이 주어질 것을 말한다. 물론 빌립보 성도들에게 어떤 고난이 주어졌는지 알 수는 없어도 여러 가지 형태의 어려움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시험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과 사탄이 주는 시험이 있는데 성경에는 이에 대한 분명한 구분을 하지 않고 다만 시험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구분하는가하면 사탄이 주는 시험은 유혹으로 일단은 달콤하게 보이고 그럴 듯하게 보여 빠지기 쉽다. 대만의 남쪽에 있는 가오슝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고 이어서 도로 중앙 분리대에 지름 10Cm이상되는 버섯이 자랐는데 실제는 그 버섯이 독버섯이어서 시민들이 먹을까 염려해서 당국에서 먼저 다 수거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독버섯은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예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안에 독이 있어 먹으면 큰일 난다. 사탄의 유혹도 마치 이와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험은 훈련이요 시련이고 연단이라는 것이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험은 우리를 넘어뜨림이 아니요 세우는 것이 목적이지만 막상 시험을 당하는 그 순간은 힘들고 어려워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도 말씀하듯이 시험이 없으면 사생아라고 표현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연단하신다고 말씀한다.

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어떤 사람이 죽은 후에 하늘나라에 갔더니 천사가 뭔가를 열심히 포장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궁금해서 천사님은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포장하냐고 물었다. 천사가 사람들에게 전해줄 행복을 포장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포장을 왜 그렇게 단단하고 튼튼하게 하냐고 물어 보았다.

천사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려면 멀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걸려서 단단하고 튼튼하게 포장을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포장이 특이한데 무엇으로 만들어졌냐고 묻자 천사가 고난이라고 하면서 고난의 포장을 벗기지 않으면 행복이란 선물을 받을 수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 사람은 천사에게 고난이라는 단단하고 튼튼한 포장은 무엇으로 열 수가 있냐고 묻자 천사는 감사라고 하면서 감사하는 마음만이 고난의 포장을 풀고 행복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고난은 힘들다는 생각에 지레 겁먹고 낙심하여 주저앉는다. 그러나 한쪽면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다른 면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고난은 포장된 행복이라는 것을 인식하여 고난이 주어질 때 하나님께서 내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훈련하신다는 것을 깨달아 오히려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아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인생은 고난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기에 환난의 물결이 치고 어려움의 폭풍우가 불어 온다 해도 선장되시는 예수님만 의지하여 잘 헤쳐 나가 찬란한 영광의 그 나라에 다 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의 사랑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우리 가운데 미움 다툼 시기 질투는 버리고 서로 하나 되어 협력할 수 있기를 바란다. 신앙생활에 고난이 주어질 때 고난에 대한 바른 인식으로 낙심하거나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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