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교회를 사랑하는 자의 특징
시 122:1-6절
241208주일낮설교
국민일보에 실린 예화다. 일본 오이타현 유후인은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 여행 가려는 사람이 전문 가이드에게 좋은 료칸(일본의 전통숙소)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유후인 이라면 나마노유 료칸이죠. 유후인에 그곳보다 좋은 곳은 없습니다. 그곳에 가면 꼭 미조구치 군페이씨를 찾으세요.” 추천대로 근사한 여행을 다녀온 그는 이번에는 멋진 산장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후지바야시씨가 있는 무라타 산장이 단연 최고입니다.” 그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저는 좋은 숙소를 여쭤보는데 왜 항상 장소가 아닌 사람을 추천해주십니까.” “좋은 요리사가 있는 곳이 좋은 레스토랑 아닙니까. 호텔이나 료칸도 좋은 서비스와 청결을 만드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그 일을 멋지게 하는 사람이 있는 장소를 추천해드립니다.”라고 대답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장소를 만든다. 그렇다면 좋은 교회를 만드는 것은 좋은 성도들이 있는 교회라고 할 수 있다.
행 17:11절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베뢰아 교회를 말하기 보다는 베뢰아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고 데살로니가 교회가 아니라 데살로니가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 개개인은 각자가 작은 수원 새빛교회 교인이다. 교회인 우리 성도들은 우리가 먼저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육체를 사랑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교회된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작은 교회가 모여 형성된 큰 공동체인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
시120편–134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시편으로 122편은 세 번째 노래다. 성도의 기쁨과 감격은 성전으로 올라가서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본시는 교회를 사랑하는 자의 특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여러분은 교회를 사랑하는 자의 특징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시대에 따라서 사람들의 생각도 다를 수 있다.
여러분의 생각이 어떤지 모르지만 성경은 교회를 사랑하는 자의 특징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며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1.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교회에 대한 기쁨이 있다.
본문 1절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여호와의 집은 성전을 말한다. 성전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께 기도하던 장소로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구심점은 바로 성전이었기에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성전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지 않았다. 성전은 이스라엘의 수도 였던 예루살렘에 위치하고 있었고 근처에 있든지 멀리 있든지 매일 출입하는 곳은 아니었디. 그러나 그들의 마음 가운데는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성전을 찾아갈 기회가 생기면 늘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올라갔다.
특히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가 있는 가운데는 비록 성전을 자주 갈 수 없었지만 그들의 마음 중심에는 늘 성전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절기에 맞추어 성전을 찾아올 때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심정 이상으로 상기된 마음으로 들떠 있었다.
성전은 오늘 교회를 의미한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특별히 교회라고 하는 장소에서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곳 에서나 하나님을 찾고 구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 값으로 세우신 교회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건물 자체가 신령하거나 거룩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성도들이 예배드리는 곳이기에 거룩한 곳이고 예배의 장소로 사용되는 물건들이기에 귀하게 여기고 있다.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업장이나 카페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지만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드리기에는 부적합하다. 그러므로 정한 예배 시간에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집중하여 예배드릴 수 있고 마음을 다해 기도할 수 있기 때문에 교회는 우리에게 소중하고 귀한 곳이다.
이런 교회에 올 때 우리 마음이 구약 성도들이 가졌던 간절함과 기쁨이 넘치고 있는가?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전을 매 주마다 찾는 것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절기 때나 한 번씩 찾는 것이었기에 간절한 기대감과 설레 임이 있었겠지만 오늘 우리는 매주 어떤 사람은 그 보다 자주 교회를 출입하다 보니 설레는 마음이 사라졌다고 말 할 수 있다.
외국에 나가 있느라고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마음에는 늘 참석하고 싶었지만 오지 못하다가 모처럼 시간을 얻어서 교회에 왔을 때는 꿈꾸는 것 같고 교회 간다는 것이 설레는 마음을 갖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매주일 참석하다 보면 이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연애할 때에 며칠 만에 내지는 한주에 한번정도 만나다가 결혼해서 매일 함께 자고 생활 하다보면 설레고 기대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그 설레 임이 편안함으로 바뀌게 된다.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면 좋고 편안하고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된다. 사랑하는 연인의 관계가 가족의 관계로 바뀌었을 때에 설레 임과 기대감에서 편안함과 행복감으로 바뀌었지만 그 대상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대한 기쁨이 있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교회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면 교회에 대한 기쁨도 사라진다. 교회는 교인들의 모인 공동체이지만 교인들을 바라보며 그들과의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교회에 나와서는 안 된다. 비록 성도들과의 관계 속에 신앙생활을 이루어 가지만 우리가 주목하고 바라보아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바라보며 그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사 자녀 삼아 주셨음에 감사하며 그 하나님 앞에 인정과 칭찬받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이루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에 대한 실망이 있고 마음에 대한 불편함이 있어도 우리의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이 계시는 전이기에 교회가 가고 싶고 하나님의 전인 교회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내가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기쁨을 얻기 보다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고 기쁨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다른 성도가 나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 때문에 힘들어 하고 나를 피하고 있지는 않는지 늘 돌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과 다른 성도들에게 기쁨을 주는 성도가 많은 교회는 자연히 교회를 생각하며 교회에 오는 성도들이 기쁜 마음을 가지고 교회에 와서 예배하며 섬길 수 있을 줄 믿는다.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교회의 평안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본문 6절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는 것을 히브리어의 표현으로 보면 “샬루 샬롬 예루살라임.” “샬루”는 구하라는 말이고 샬롬은 평안을 의미한다.
“샬루 살렘 예루살라임”이라는 표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이 시편은 의도적으로 살롬을 강조하고 있다. 구약 성경을 통해서 많이 접하게 되는 개념이 샬롬이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보통 영어로는 “peace”라고 번역되는데 평화보다는 훨씬 더 큰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 단어는 평안 평화, 화목, 화해, 번영, 번성, 복, 형통의 의미를 포함하기에 사실 이 단어를 충분히 번역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들의 문화 속에 젖어있는 보편적인 의미의 단어다. 마치 우리나라의 전라도 방언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표준어가 된 단어가 바로 거시기라는 말이다. 거시기가 나타내는 말은 다양하기에 하나를 꼭 집어서 말 할 수 없다.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샬롬이라는 단어가 성경에서는 평안이나 평강으로 번역되어 있다.
구약 유대교에서는 종교와 민족을 구분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을 유대인이라고 했을 때 이것은 유대교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평안은 예루살렘 성을 말하기도 하고 성전을 의미하며 그 안의 백성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구약의 성도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의 평화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문제였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구약 성도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의 샬롬과 자신의 형통은 분리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는 교회의 평안을 위하여 구해야 한다. 교회의 평안을 구한다는 것은 교회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이다. 교회의 평안을 구하는 것이 곧 교회를 사랑하는 자의 형통이기에 교회가 복의 통로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의 샬롬을 실현하는데 힘써 기도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샬롬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샬롬이 깨어지거나 유지 되지 않는다면 성도들은 더 이상 형통의 복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교회에 나와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하게 되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부담이 되고 교회에 나오는 것을 싫어하게 된다. 교회 안에서 샬롬이 깨어지게 되면 그것은 참된 신자에게 있어서 너무나 큰 고통을 안겨 준다.
다른 교회 교인이 자기 교회의 문제를 가지고 상담하러 왔을 때 제가 해 준말은 신앙생활은 평안한 교회에서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 주었다.
노회 안에서도 평화가 깨진 가운데 예배하는 교회가 있어서 그 교회의 소식을 접하면서 마음이 괴로웠다. 우리 교회는 평안함 가운데 예배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장담할 수 없는 것은 언제 이 평화가 깨질지 모른다. 지금이 평안하다고 안일하게 앉아 있다가는 사탄이 노략질하여 간계를 꾸미면 걷잡을 수 없게 될 수 도 있다.
둑이 터져 범람하는 것은 조그만 물구멍을 막지 않았을 때 그것이 서서히 커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평안한 이때가 바로 교회를 위해 더욱 깨어서 기도해야 할 때 인줄 믿기 바란다. 교회의 평안은 특정한 소수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된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할 기도 제목임을 인식하여 기도의 자리에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눅 2:14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사 하나님과 불화 했던 죄인을 하나님께로 이끄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그 피 값으로 교회를 세우셔서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
그리고 몸의 지체로 구원받은 우리를 불러주셔서 교회를 통해서 신앙생활을 하게 하셨으니 우리 모두는 샬롬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음을 확신하기 바란다.
모든 성도들은 교회의 평안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며 우리 스스로가 평화의 도구로 쓰임받기를 힘써야 한다. 프란시스의 기도처럼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옵소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먼저 공동체의 평안과 다른 사람들과의 평안과 화목을 위하여 나 자신을 낮출 수 있기를 바란다. 흘러내리는 촛농처럼 자신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희생하는 모습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교회 이런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
| 514 | 기쁨의 플랫폼(19) 만족함으로의 초대 | 사무실1 | 2025-12-13 | 13 |
| 513 | 서로 짐을 나누어 져라 | 사무실1 | 2025-12-06 | 34 |
| 512 | 기쁨의 플랫폼 (18) 하나님의 평강의 은혜 | 사무실1 | 2025-11-29 | 35 |
| 511 | 성숙한 감사의 신앙 | 사무실1 | 2025-11-22 | 37 |
| 510 | 기쁨의 플랫폼(17) 함께 서 가는 교회 | 사무실1 | 2025-11-15 | 55 |
| 509 | 행복은 바른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 사무실1 | 2025-11-08 | 56 |
| 508 | 기쁨의 플랫폼(16) 십자가의 군사인가 원수인가 | 사무실1 | 2025-11-01 | 53 |
| 507 | 기쁨의 플랫폼(15) 목표를 향한 열정적인 삶 | 사무실1 | 2025-10-25 | 56 |
| 506 | 기쁨의 플랫폼(14) 진정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고 있는가. | 사무실1 | 2025-10-18 | 53 |
| 505 |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백성 | 사무실1 | 2025-10-11 | 62 |
| 504 | 기쁨의 플랫폼(13) 바른 신앙생활을 하라 십니다. | 사무실1 | 2025-10-04 | 56 |
| 503 | 기쁨의 플랫폼(12) 동역하는 아름다운 당신 | 사무실1 | 2025-09-27 | 63 |
| 502 | 기쁨의 플랫폼(11) 뒤틀어진 세대를 거슬러 빛으로 | 사무실1 | 2025-09-20 | 62 |
| 501 | 기쁨의 플랫폼(10) 구원받은 성도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 사무실1 | 2025-09-13 | 107 |
| 500 | 기쁨의 플랫폼 (9) 참된 겸손의 교과서 | 사무실1 | 2025-09-06 | 8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