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받고 싶은 교회(9)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
살전 4:1-8절
260315주일낮설교
지금은 신학대학원의 교수이시지만 젊었을 때 박사학위를 받고 유학에서 돌아온 목사님이 전임교수 자리를 얻지 못하고 강사 생활을 하며 월 60만 원으로 아내와 아이를 먹여 살려야 했다. 아이를 한 달에 수십만원 하는 유치원에 보낼 형편이 안되서 저렴하게 보낼 수 있는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을 알아보았다. 경쟁률이 높았음에도 목사님의 아이는 입학이 되었고 기쁜 마음으로 사모님이 예비 소집에 참석했다가 돌아온 얼굴에는 울었는지 눈도 퉁퉁 부어있었다. 사모님이 우신 것은 아들이 입학으로 인한 기쁨의 눈물이 아니었다. 생활이 어려운 가정이 많은 지역이어서 맞벌이 가정이 많은데 자녀가 입학하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던 몇몇 부모들이 있었다. 그래서 유치원 원장이 이미 입학이 된 아이들의 학부모들에게 정원 30명 외에 다섯 명만 더 받으면 안 되겠냐고 호소했다. 사모님이 그렇게 하자고 찬성했더니 주위의 눈총이 싸늘해지더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들이 늘어나면 교육환경이 나빠지니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그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한 원장 선생님의 눈에는 이슬이 맺히고 추가 입학을 기대했던 부모들도 울며 돌아갔다. 그런데 반대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교인들이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경우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아도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한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결정의 순간에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을 구별해야 한다. 입술로만 하나님의 뜻을 말하기보다는 실제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비로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선택의 순간에 우리는 자기의 이기심과 유익을 먼저 계산한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겠다고 기도 한다.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자기 생각에 얽매여 있으면 자기 생각대로 기울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여겨진다. 자기의 이기적인 욕심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도 신의 뜻(인샤알라)이라면 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러면서 그들이 말하는 천국에는 순교자의 상이 크다고 하면서 자폭 하도록 한다. 몸에 폭탄을 두르거나 차에 폭탄을 가득 싣고 사람이 많은 건물로 돌진해서 많은 사상자를 내며 스스로 목숨을 던진다. 이것은 올바르지 않은 일이고 상 받을 일도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강조한다. 신의 뜻이라고 갖다 붙이면 신의 뜻이 되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아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물으며 구하고 찾아야 한다.
본문의 말씀은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배워서 알고 있으니 더욱 많이 힘쓰라고 권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기에 본문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우리도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쓸 수 있기를 바란다.
1. 하나님의 뜻은 계속되는 신앙의 진보다.
본문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신앙의 모습은 참으로 모범적이었다. 그들의 믿음의 소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을 넘어 각처에 퍼지게 되었고 훌륭하고 모범적인 신앙의 모습은 바울이 더 이상 언급을 회피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사랑하는 바울에게 있어서는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처럼 늘 염려스러운 부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자기가 가서 그들의 신앙 상태를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들을 보충해 주기를 원했지만 성령이 허락하지 않아서 못 가고 대신해서 디모데를 보냈고 전해 들은 소식은 바울의 염려를 잠재웠다.
그렇지만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는 말처럼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지만 더 잘하라고 신앙을 독려하고 있다. 1절 하반 절 말씀을 표준 새 번역 성경으로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할 것인지를 우리에게서 배운 대로 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게 하라고 권면한다.
신앙생활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반 적인 경우 자전거를 탈 때는 자전거에 앉아서 페달을 힘껏 밟아야 넘어지지 않는다.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은 여러 가지 묘기도 부리고 제자리에 멈춰 서 있기도 하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페달을 밟지 못하면 바로 넘어 진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페달을 계속 밟아야 넘어지지 않고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신앙이 이 정도면 쉬었다 가도 되지 않겠느냐고 방심하는 순간 가지고 있던 신앙마저도 다 소실된다. 신앙에 있어서 이 정도면 괜찮고 좀 쉬어야지 하는 자세는 금물 이다.
성경은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워서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더 잘할 수 있도록 더욱 많이 힘써야 한다. 자라는 어린 자녀들에 대해서 그만 자라도 된다고 말리는 부모는 없다. 물론 비정상적으로 키가 크던지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상황에서 자녀들이 계속 자라며 성숙해지기를 원하고 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도 동일하다.
엡 4:13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성도들은 마치 어린아이가 장성한 사람으로 자라가듯 계속 적으로 자라나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자라지 않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요 무기력한 신앙이며 아울러 맺혀야 하는 좋은 열매도 맺히지 못하기에 하나님 앞에 내놓을 것이 없다.
하나님이 우리의 신앙 성장과 성숙을 원하고 계시지만 성도들 역시 힘써 신앙 성장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세상만사 저절로 쉽게 되는 것이 없듯이 우리 신앙 성장 역시 아무런 수고나 노력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더욱 많이 힘쓰라고 권면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신앙 성장을 위해서 힘써야 함을 말씀하며 더 나아가 우리의 거룩한 삶을 요구하신다.
2. 하나님의 뜻은 성도의 거룩한 삶이다.
본문 3절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7절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본문 3-6절에서 신앙 성장의 방해되는 요소로 음란을 말하고 있는데 음란의 범위를 본문에서는 혼외정사 한 가지만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6절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 일이라는 것은 지금 논란 중인 문제에 관한 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일은 본 단락에서 논의되고 있는 음란과 색욕을 따르는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
어떤 해석은 이것이 넓은 의미의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악행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본 단락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관점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분수를 넘는다는 것도 금지된 선을 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본 절의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는 것은 혼인 관계 밖에서 성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이방인들이 행하는 것처럼 타인의 아내를 넘보는 행위를 가리키며 이방인은 지역적인 범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러나 신앙생활에 방해되는 요소로 음란을 말하고 있는 말씀은 좀 더 넓은 의미의 악행들을 말하고 있다. 음란이라는 것은 음행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음탕하고 난잡한 것들을 말하는 것으로 어느 특정한 한 범죄 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모든 형태의 불법적인 악행들 즉 간음이나 혼외정사나 동성애 그리고 성도착 내지는 매매춘 같은 것들을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본문은 음란한 성적 생활을 타파하며 자신의 아내와의 성생활에 있어서 거룩하고 존귀함으로 대하라고 권하며 성적인 욕망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하며 부부관계를 넘어서 이웃의 아내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권면한다. 이런 악행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의 처사라고 지적하고 있다.
더 나아가 믿음의 사람들도 세상 사람들이 행하는 것처럼 불의한 일에 치우치다 보면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하나님 없는 사람처럼 행하게 된다.
호 5:4절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음란은 우상숭배를 말하기도 한다. 시 106:38-39절 “무죄한 피 곧 그들의 자녀의 피를 흘려 가나안의 우상들에게 제사하므로 그 땅이 피로 더러워졌도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로 더러워지니 그들의 행동이 음탕하도다.”
음란은 성도의 거룩한 삶을 방해하는 최대의 걸림돌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은 음란의 유혹으로 가득 차 있다. 세상 사람들이 성에 대해서 문란하다고 해서 세상과 교류를 단절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인터넷에서 성에 대한 유혹이 많다고 해서 아예 인터넷을 차단하고 살아갈 수도 없다. 젊은 남녀 사이에 성적 문화가 문란하다고 해서 남녀 사이를 차단할 수도 없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라고 해서 세상에 노출된 성 문화에 대해서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범죄하는 경우에 계획적인 범죄도 있지만 우발적으로 행하는 잘못도 있다. 그러므로 악한 세상을 바라보며 탄식하고 조바심을 내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악하니까 악한 세상에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자꾸 움츠리는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이 말은 내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자세로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전 6:18-19절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 께로 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한 신앙생활을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아 우리가 행하고 있는 믿음의 모습을 잘 행하되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길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신앙 생활에 저해 요소가 많이 있지만 그중에 음란을 이기고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귀한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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