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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의 참된 의미
2026-04-18 09:15:34
사무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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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의 참된 의미

22:7-15

260412주일낮설교

기독교에서 드리는 성례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가 세례요 또 하나는 성찬이다.

세례는 믿는 자가 되어가는 과정의 첫 출발에 해당한다. 세례를 받는 사람은 죄인인 나를 부르시고 믿음을 갖게 하시고 자녀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물론 먼저 믿은 성도들은 이제 믿기 시작한 성도를 격려하고 사랑으로 끌어주어야 한다. 그와 더불어 성찬식에서는 우리를 위하여 찢기시고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고 베푸신 사랑을 되새기며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본문에서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어떤 집 다락방에서 유월절을 기념하는 식탁이 차려졌다. 연례적으로 치루어지던 전통적인 유월절 만찬이 주님의 축사하심으로 인해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 만찬은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모든 성도들이 계속해서 기념해야 하는 성찬이 된 것이다.

마태복음에서는 같은 본문 앞에 언급된 시몬의 식탁은 여인의 아름다운 헌신을 기념하는데 다락방에 있는 식탁은 십자가에서 수난을 당하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념한다.

주님이 베푸신 유월절 만찬의 의미를 살펴보면서 성찬식에 참여하고자 한다.

 

1.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신 예수님

 

22:12-13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하시니 그들이 나가 그 하신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하니라

 

유월절은 죽음의 천사가 어린양의 피가 발라진 집을 넘어간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며 유대력으로 니산 월 즉 음력 114일 저녁부터 시작된다. 마가는 유월절무교절의 첫날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날부터 시작해 한 주간 계속된다. 그러므로 예수님 시대에는 유월절을 무교절에 포함시켜 하나의 절기로 간주했고 이 절기를 유월절이나 무교절이라 부르게 되었다. 마가는 이 날을 양 잡는 날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출12:6절에는 유월절이 시작되는 14일 저녁에 양을 잡고 양을 잡으면 해가 진후에 유월절 식사를 한다. 그런데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오는 순례자들이 많아지면서 13일 오후부터 양을 잡았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 때가 이날 저녁이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어디서 유월절 식사를 하기 원하시는지 물어 본다. 구약 신16:6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가 애굽에서 나오던 시각 곧 초저녁 해 질 때에 유월절 제물을 드리고

 

장로들의 전통이라고 불리었던 미쉬나에 의하면 유월절 식사를 예루살렘 성안에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수님은 두 제자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시면서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거든 그를 따라 가라고 하신다. 그 사람이 들어간 집의 주인에게 선생님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면 본문에 집주인이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다락방을 우리가 일반적으로 칭하는 마가의 다락방 즉 마가의 어머니의 다락방으로 본다.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 내에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를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한다. 날이 저물자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데리고 다락방으로 가시는데 다락방은 분명히 그 주인의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예비 되었을 때 주님의 객실이 되었다. 그 객실은 주님의 식탁이 마지막으로 차려지는 장소요 주님의 재림 때까지 기념하는 성만찬 예식이 시작되는 장소가 되었다.

2. 만찬이 성찬인 이유

 

본문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예수님은 고난받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준비시키시고 함께 저녁 식사를 하신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한 마지막 저녁 식사이기에 최후의 만찬이라고 말한다.

만찬이라고 한 것은 그 자리 식사가 화려하게 잘 차린 음식이어서가 아니라 저녁 식사였기에 만찬 이다. 저녁 식사 메뉴는 유월절 식사인 양고기도 없었고 다만 당시 서민들이 주로 먹었던 빵과 포도주였다.

그런데 우리는 마지막 식사를 성찬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음식 자체나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식사 자리에 누가 초대했는가 하는 것이다.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함께하는 식사 자리도 중요하지만 조 부모가 아들과 손주의 가정을 불러서 사주며 함께 하는 식사는 더 귀하고 중하다.

목사들도 자체적으로 모이는 조찬 모임에는 피곤하고 힘들어 참석하기보다는 많이 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연초가 되어서 시무식 조찬 기도회로 모이고 조찬으로 설렁탕을 먹는다고 해도 수원시장의 초청에는 많은 목사들이 참석한다. 그만큼 초대자가 누군가에 따라서 그 식사 자리의 가치가 달라진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고난받기 전에 나누었던 빵과 포도주는 단순한 식사였지만 예수님의 초청이었기에 거룩한 식사 자리가 되었다.

더 나아가 빵과 포도주가 전부인 단순한 식사였지만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다.

고전 11:24-25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다음 날이면 십자가에서 찢겨질 살과 흘릴 피에 대한 예표로 떡과 포도주를 주시며 먹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음날 실제로 그 몸을 십자가에서 찢으시고 피를 흘리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시고 영원한 음료가 되셨다. 이것이 우리가 받게 될 성찬이다.

6:54-55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줄 믿기 바란다. 그러면 우리는 이미 살아있는 영적 존재들인데 우리를 다시 살리는 성찬을 매번 받아야 하는가 하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성찬을 대할 때마다 예수님을 기념하라고 했다. 우리는 쉽게 망각하는 존재들이다. 자기에게 절실한 것들에 대해서는 잊지 않고 기억한다. 그러나 별로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소홀히 하거나 쉽게 잊어버린다. 육신 적인 일에 치우쳐 영적인 일들을 쉽게 망각해 버린다. 그러므로 성찬을 통하여 나를 위해 행하신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다시 한번 각성하는 성도들과 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성찬을 통하여 냉랭했던 우리 가슴에 주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이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미지근한 믿음이 바뀌어 주님을 향하는 열정적인 믿음으로 소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죽은 것 같던 골짜기의 마른 뼈 들이 서로 뼈가 들어맞고 살과 가죽이 입히고 생기가 들어가 살아났듯이 영적으로 나약하고 죽은 것 같던 우리 심령에 생명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성찬을 통하여 우리에게 배풀어 주시는 주님의 능력으로 다시 한번 새롭게 변화되어 주님을 위하고 교회를 위하여 무익한 자들이 유익한 자가 되는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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