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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플랫폼(2) 감사와 기쁨의 관계
2025-07-19 09:04:16
사무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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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플랫폼(2)

감사와 기쁨의 관계

1:3-8

250713주일낮설교

주님의 기쁨이 당신에게 서로 인사 할 수 있기를 바란다.

30년 전에 상영되었던 영화중에 홀랜드 오퍼스라는 영화가 있다. 홀랜드라고 하는 사람이 음악을 전공하고 시골에 음악교사로 왔다. 그런데 홀랜드의 꿈은 뉴욕 브로드웨이에 가서 큰 악단을 지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늘 그것을 위해 꿈꾸고 계속 작곡을 하면서 애를 썼지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결국 그는 나이가 들어서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그가 은퇴하고 떠나는 날 쓸쓸하게 교정을 나서는데 그가 가르친 제자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그 선생님을 모시고 큰 강당으로 들어갔다. 그 강당에는 많은 제자들이 밴드부 복장을 하고 악기를 가지고 연주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주지사를 지낸 한 여 제자가 선생님께 지휘봉을 맡기며 말하기를 선생님의 인생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선생님의 제자이자 악보에 쉼표요 음표입니다. 선생님의 열매들을 바라보시며 이제 지휘해 주세요.” 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브로드웨이에서 연주하려던 그 곡을 밴드부가 연주했다. 정말 그 자리는 감격스러운 자리였고 눈물이 흐르는 감동의 자리였다. 그에게는 많은 열매인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우리를 바라보는 주님의 마음이나 전도한 성도가 신앙으로 잘 성장하며 성숙한 신앙을 갖는 것을 바라보는 전도자의 마음이나 동일할 것이다. 내가 전도한 영혼이 믿음 안에서 성장해 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마치 자녀를 낳아서 양육하는 가운데 훌륭한 인물로 성장해 가는 것을 바라보는 부모가 갖는 기쁨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 할때에 마음속에 솟아나는 감사와 기쁨을 주체 할 수 없었다. 더 나아가 본문 7절에서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다고 고백하며 8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를 사모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면 무엇이 빌립보 성도들을 마음에 두고 생각할 때마다 감사와 기쁨이 넘쳤고 주체 할 수 밖에 없는 사랑으로 기도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살피며 주시는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1. 주님 안에서 이루어진 참된 사랑의 교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본문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한다는 말은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또 다른 성경을 보면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한 첫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복음을 전하는 데 협력해 온 것을 나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번역하고 있다.

바울의 2차 선교 여행은 바울이 가기를 원했던 소아시아 지방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마게도냐 지역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마게도냐 지역으로 갔다가 첫 성인 빌립보 성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기도처를 찾다가 옷감장사 루디아를 만나게 되어 그와 그의 가족을 전도해서 결신하게 된다.

그리고 귀신들린 여인의 귀신을 내쫓아 주었지만 오히려 고소를 당하여 바울은 실라와 함께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것으로 인하여 빌립보 간수와 그의 가족들이 구원을 얻게 되어 빌립보에서 믿음의 두 가정을 얻게 되었다. 그렇지만 바울 일행은 더 이상 빌립보에 머물지 못하고 그곳에서 나와 데살로니가 지역으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빌립보에는 예수 믿는 두 가정을 통하여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그렇게 세워진 빌립보 교회는 처음부터 바울의 선교 사역에 동참하는 교회가 되었다. 그것은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서 새 생명의 삶을 얻게 해준 바울에 대한 깊은 감사와 바울이 행하고 있는 전도 사역이 귀중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옆에서 바울의 사역에 동참할 수 없었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물질로 바울의 선교 사역에 동참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빌립보 교회가 선교헌금을 준비해서 담임 목회자였던 에바브라디도 편에 전달하며 바울의 처지를 돕게 했다.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뒤에도 보면 여러 차례 바울의 선교 사역에 물질과 마음으로 도왔던 교회였다.

빌립보 교회는 단순히 바울의 선교 사역을 물질로만 도운 것이 아니라 예수 믿은 처음부터 계속해서 바울을 생각하며 바울의 선교사역에 꾸준하게 사랑으로 참여했다. 바울에게 있어서 빌립보 성도들은 그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빌립보 성도들도 바울을 향해서 가진 사랑이 형식적이거나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겉치레로 행한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과연 오늘의 교회 안에서 이런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여 즐겁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관계가 단순히 형식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라는 인사를 나누고는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서로 나눌 말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형식적인 관계는 성도간의 진정한 결속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큰 문제는 바로 외로움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들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도 다들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며 살아간다. 미국의 사회학자 리스먼이 말한 군중속의 고독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한 형제자매 되었다는 것은 우리 가운데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간의 관계가 서로 떨어져 있으면 소식이 궁금하고 만나면 마음이 흐뭇해지는 그런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너는 너 나는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의식을 가지되 우리의 영역이 매우 좁아서 그 우리 안에 좀처럼 다른 사람은 발붙이기가 힘들게 하는 경향들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라는 울타리가 좁게 쳐지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늘 가변적이어야 한다. 나와 관계있는 소수의 사람끼리만 나하고 친한 사람들끼리만 우리라는 의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 순안에서 순 원들의 관계가 이런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전도회 안에 그리고 교회 안에 점차 확대되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교회 모든 성도 간에 다 이런 관계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는 대상들이 점점 넓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소외되어 있는 성도에게 먼저 다가가 인시하며 서로의 형편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열어야 한다. 자기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 대해서 취조하듯이 다가갈 때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서먹해 지고 결국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주 안에서 만났기에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줄 믿기 바란다. 우리가 먼저 프란시스의 기도처럼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 탓하지 말고 내 자신이 이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가 되는 것에 먼저 제물 되기를 소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도 바울과 빌립보 교회가 복음 안에서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여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서로를 가슴에 품고 섬겼듯이 우리의 관계가 이런 관계를 형성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2.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끝까지 성도들을 착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본 절에서 착한일이라는 것의 문자적인 의미는 선한일이라는 것이다. 선한 일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 보다는 문맥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쉽게 이야기 하면 착한 일은 성도들의 구원의 역사를 말한다. 그러므로 본문의 의미는 빌립보 성도들의 구원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마침내 그리스도의 날에 그것을 완성하실 것이라는 말이다.

 

바울은 빌립보 지방에 들어가서 루디아의 가정과 간수의 가정 식구들을 구원한 것이 자기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이었음을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빌립보 성도들이 처한 초대교회 상황에서 비록 신앙의 많은 어려움이 있고 또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으므로 바울은 인간적으로 그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비록 사람의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변함없이 빌립보 성도들과 함께 하사 그들을 지키시고 마침내 구원을 완성하실 것에 대해서 확신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의 구원의 과정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계획이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정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을 입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한 대속 제물로 보내 주셨다. 나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은혜로 십자가상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대속제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게 하셨다. 그 믿음으로 인하여 우리를 구원받게 하셨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셔서 천국 가는 그 날 까지 우리 영혼을 붙들어 주시는 줄 믿기 바란다.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있다. 나를 죄악에서 건져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이제 내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존재가 된 것을 의미한다. 내가 하나님의 손을 놓는다 해도 나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은 여전히 나를 붙들고 게시는 줄 믿기 바란다.

비가 오면 물이 고인 작은 웅덩이가 생긴다. 어린아이들은 구정물이 고여 있는 작은 웅덩이를 지나쳐 가기 보다는 일부러 그리로 가서 거기서 물을 텀벙거리며 물장난을 한다. 그러면 더러운 물이 몸에도 튀고 옷에도 튀게 되어 옷이 더러워진다. 우리 모습이 마치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죄악 가운데서 허덕이며 그것을 피하기보다는 오히려 죄악을 즐기며 살 때도 있다. 우리가 신앙인이고 교회의 직분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 가운데 헤매는 연약함이 있는 나 자신의 모습만을 바라보지 말고 나를 사랑하사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커질수록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있는 초라하고 연약한 자기 모습을 깨닫게 된다.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면 자기의 실체를 깨닫고 회개하게 된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자는 복된 자 인줄 믿기 바란다. 회개가 없는 뻔뻔한 심령은 죽은 자다, 하나님을 만난 자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모든 죄에서 사하시며 깨끗하게 하실 줄 믿기 바란다. .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은 전도행사에 쓰이는 구호가 아니라 오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다. 나를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까지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줄 믿고 날마다의 삶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기에 부끄럽거나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옆에 있는 이웃을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바울과 빌립보 성도 상호간에 사랑과 기쁨의 대상이었듯이 우리 모두가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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