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받고 싶은 교회(10)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의 바른 신앙 자세
살전 4:9-12절
260322주일낮설교
미국 LA 공항에서 동남쪽으로 1시간 떨어진 곳에 요바린다라는 도시가 있다. 여기엔 리처드 닉슨 대통령 도서관 및 기념관이 있다. 우리는 닉슨 하면 미국의 나쁜 대통령으로 기억한다. 닉슨은 그의 참모들이 ‘민주당 선거운동 지휘 본부’가 있었던 워터게이트호텔에 도청 장치를 장착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정직하게 사과하지 않았고 그 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한국 같았으면 대통령 기념관을 짓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한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그의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역사의 거울을 후대에 남겼다. 기념관에는 닉슨이 베트남 전쟁을 종식하고 중국과의 외교를 시작한 것에 대한 공을 인정하고 치명적인 잘못인 워터게이트 사건의 전모도 소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민주주의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때때로 우린 너무 극단적이다. 좋으면 다 좋고 싫으면 다 싫은 것이다. 그것은 균형감각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서도 균형을 통한 화합을 강조해야겠지만 이런 모습이 우리 교회 안에서부터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나하고 가깝거나 좋은 관계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모든 것들을 포용한다. 그러나 나와 생각이 다르고 뜻이 다르다고 하면 모든 것들에 대해서 악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대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을 흑백논리로 나눌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든지 그 사람에 대해서 좋지 않게 판단하는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그 사람에 대해서 평가하면서 대해서는 안 된다.
모든 상황에 대해서 균형 잡힌 자세로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지 자기 생각에 치우쳐 말하는 한마디의 말이던지 행동 하나하나는 균형을 깨뜨리게 된다.
개인적인 신앙생활에 있어서 역시 균형을 잃어서는 안된다. 말씀과 기도 가 같이 가야 하고 찬양과 봉사가 같이 움직여야 한다.
바울 서신의 특징을 본다면 책의 전반부에는 교리적인 면을 다루고 있고 후반부에는 윤리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 교리적인 면만을 강조하면 말씀을 듣는 성도들이 지식적으로 머리만 커지는 가분수 적인 신앙의 모습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론적인 부분을 말하면서 또한 윤리적인 부분을 강조할 때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이루어 가게 된다. 지 정 의의 인격적인 요소를 가지고 균형 잡힌 성도의 신앙생활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본문의 말씀 속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말씀을 통하여 말세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 합당한 신앙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살피며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1. 사랑의 용광로를 품고 사는 성도
본문 9-10절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사도 바울은 살전 1:2-3절에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신앙이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했다. 더 나아가 살전 1:8절에서는 믿음의 풍성함이 그 교회 안에만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게도냐와 아가야 온 지방에 널리 퍼져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라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서는 그 사실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믿음의 삼 요소 가운데 형제 사랑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잘하고 있는 형제 사랑을 여기서 멈추지 말고 더욱더 그렇게 하라고 권면한다.
성도들이 행하고 있었던 형제 사랑의 특징을 살펴보면 먼저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사랑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형제 사랑은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성경의 예시를 들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이지만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없다. 성도다운 삶으로 형제간에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이기에 자녀 된 우리 성도의 삶 역시 아버지 하나님의 품성을 따라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요일서 4:8절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 이심이라.” 이어지는 11절 말씀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형제 사랑이라고 했을 때 오늘 본문에서는 유대인이 생각하고 있었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대상을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자기 동족을 형제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본문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행하고 있는 형제 사랑의 범위는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라는 말씀 속에서 알 수 있듯이 지역과 환경을 초월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사랑의 대상의 범위는 내가 정하여 내가 원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하여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오늘의 세상은 점점 사랑이 식어가고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향하여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서로 배려하며 섬기기보다는 나와 관계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상대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거나 오히려 무관심으로 대한다. 철저하게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의식을 가지고 개인주의적인 경향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모래알처럼 서로 인접해 있으면서도 따로 놀고 있다.
세상에서는 사랑을 노래하고 사랑을 찾고 있지만 변질된 사랑만 난무하고 있는 이때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은 사랑의 실천을 우리의 삶의 가장자리에서부터라도 이루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주변에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 나누며 관심을 가지고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무 이기적인 자세로 주장하지 말고 남을 배려하는 자세로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교회 내에서도 순 원 간에 내지는 서로 봉사하는 관계에서든지 서로 교제하는 관계에서 내가 먼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상대를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상대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 주기를 바라기 보다는 내가 먼저 용기를 내서 손 내밀어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노회 안에 어떤 교회에 리더 십이 교체되면서 부임한 목사님이 있다. 이 사람은 목사 안수 연한이 많지 않은 젊은 목사였다. 노회로 모이면 노회원인 다른 목사님들을 만나면서 서로 인사를 나눈다. 그러면 먼저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일반 적이다. 노회 증경 노회장들은 높은 사람이 아니라 먼저 목사가 된 목사 선배이기 때문에 대체 적으로 먼저 인사를 한다. 그런데 그 새로 부임한 목사가 어느 노회장이든지 와서 인사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증경 노회장들의 입에서 사람이 교만하다는 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같이 여행할 기회가 있어서 식사하면서 대화하는 가운데 그 사람이 낯가림이 심하고 상당히 내성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교제가 원활하지 못한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이해가 되었다.
세상의 흐름은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로 흘러가 자기만 아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신 말씀을 따라 온 마음을 다해 진정으로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2. 말세를 사는 성도들의 합당한 삶의 자세는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본문 11절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표준 새 번역 11절 “그리고 우리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대로, 조용하게 살기를 힘쓰고,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일을 하십시오.”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임박했다는 생각 속에 젖어있으면서 재림의 때를 오해하여 잘 못 행하고 있던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책망하며 바르게 교정하는 말씀이다. 성도 들 중에는 주님의 재림에 대해 이제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긴박함 가운데 자기는 재림을 맞을 준비를 갖추었다고 자부하면서 자기 육신 적인 일을 뒷전으로 미루고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이 어떻고 부족한 것이 무엇이라고 찾아다니며 일일이 참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하여 조용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재림의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주님의 재림이 언제 임하든지 우리는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주님 재림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자기가 하고 있는 육신 적인 일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처럼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 주님 맞을 준비를 잘한다고 하면서 정결한 신부의 모습으로 깨끗한 옷을 입고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오실 예수님을 맞을 준비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모습은 마치 예수님을 맞이하는 열 처녀의 비유를 생각하게 한다. 비유의 내용을 각색해 보면 5명의 처녀는 지기에게 주어진 삶에서 믿음의 자세로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5명의 처녀는 신랑 맞을 준비를 한다고 새 옷을 준비하여 입고 얼굴 단장 몸단장을 하느라고 시간을 다 허비했다. 주의 뜻대로 믿음의 기름을 준비된 다섯 처녀는 신랑과 함께 잔치 자리에 들어갔고 엉뚱한 것에 치우쳐 믿음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다가 우왕좌왕하다가 다시 방문한 잔치 집 문은 굳게 닫혀 버렸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성한 무화과나무의 이파리가 아니고 그 안에 맺혀있는 열매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주님이 언제 부르시던지 우리가 가져가야 할 열매를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우리 개인 신앙의 열매를 드려야 하며 봉사의 열매도 풍성하게 드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살면서 세상 속에서 하는 일의 열매도 주께 드려야 한다. 우리 개혁주의 신앙에 있어서 세상의 직업이라는 것은 우리를 직업으로 부르셨다는 소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를 세상에 두신 것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에게 맡겨진 직업 속에서 열매를 찾으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직장 생활하는 성도들은 사장의 눈을 의식하며 일하기보다는 우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믿음의 자세로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악한 세상이지만 세상에 물들어 적당히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있는 자리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교회 이름처럼 세상 속에서 새 빛을 발해야 할 것이며 이런 작은 등불들이 모인 수원 새 빛 교회가 하나님 보시기에 칭찬받는 교회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교회 내에서도 사랑이 넘치고 서로를 향해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배려하는 아름다움이 넘쳐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 감당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통하여 주님의 기쁨이요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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