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사랑과 행복의 보금자리
엡 6:1-4절
260510주일낮설교
옛날 페르시아의 사이러스 왕이 전쟁에서 승리를 했다. 그래서 적국의 왕자와 그 부인 그리고 아이들을 생포해 왔는데 사이러스 왕은 왕자를 죽이기 전에 심문을 했다. “만일 내가 왕자인 당신을 살려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가진 재산의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만일 당신의 아이들을 살려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의 재산 전부를 드리겠습니다.” “만일 당신의 아내를 살려준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면 제 생명을 드리겠습니다.” 사이러스 왕은 아내를 위해 자기의 생명을 바치겠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이 어디 있느냐? 이런 사람의 재산을 뺏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사람은 살려야 한다고 해서 온 가족을 다 살려주었다. 그날 밤 살아서 돌아온 왕자와 그 가족은 너무 기뻐서 축하 잔치를 벌였다. 왕자가 아내에게 말한다. “여보 사이러스 왕은 비록 적국의 왕이지만 참 훌륭한 사람이고 남자 중에 남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내가 말하기를 ”여보, 저는 사이러스 왕이 멋있는 사람인지는 알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사이러스 왕이 어떤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아요. 다만 당신이 나를 위해 죽겠다고 말한 당신의 말이 생각날 뿐 이예요. 나는 당신을 보는 동안에는 다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라고 말했다. 남편으로 아내를 이 정도 사랑한다면 진정으로 행복한 부부라고 말할 수 있다.
믾은 사람들이 돈이 있어야 가정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사람은 누구나 열등감을 가지고 산다. 그러나 이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약간의 부족함을 느끼며 채워가는 즐거움이 행복을 만든다.”고 말했다. 부족함과 결핍이 오히려 우리를 성장시키고 더 깊은 행복으로 이끌 수 있다는 말이다.
마 5: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 임이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작은 것에서도 기쁨을 찾고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다. 행복은 큰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얻을 수 있다. 지난날의 좋은 기억을 떠올리거나 좋은 음악과 글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주변의 좋은 친구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값비싼 것이 아니어도 행복의 길은 늘 열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 평안과 행복이 넘치는 믿음의 복된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가정이 겉으로 지어진 건축물인 하우스가 아니라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스위트 홈이 되기 위해서 가족 구성원들은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란다.
1. 부모 공경은 마땅히 해야 하는 필수 사항이다.
본문 1-2절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개역 개정 성경에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다른 성경에서는 의미를 부여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면 꼭 해야만 하는 것으로 자녀들에게 필수적인 요소다. 그런데 2절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약속이 있다고 하면서 3절에서는 공경한 결과로 잘되고 땅에서 장수한다고 말씀한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면 아무런 대가가 주어지지 않아도 꼭 해야 한다. 그런데 당연한 일이라고 하면서도 그것을 행하면 복이 있다고 말씀한다. 이것은 부모 공경에 대해서 꼭 지키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성경이 부모 공경에 대해서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 본성에 부모 공경에 대해서 등한히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녀이면서 부모다. 자녀 된 사람들로서 자기 부모 공경에 대해서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부모님을 여의고 나면 우리 마음에 남는 것은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만 생각난다.
후회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부모님 살아생전에 잘해드리지 못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부모님이 이미 돌아가셨는데 후회스러움이 든다고 해서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어찌할 수는 없다. 그러면 그저 후회하고 탄식하므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우리의 자녀들은 나처럼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도록 부지런히 부모 공경을 가르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대접받고 잘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이 이것을 잘 행하여 그들의 삶에 하나님 말씀대로 복된 삶을 살 수 있게 해야 될 줄로 믿는다.
오늘의 시대는 자기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흘러가고 있다. 이것을 사회 현상으로 바라보지 말고 성경을 통해 시대를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딤후 3:1-2절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시대를 거스르는 것은 쉽지 않아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흐름에 우리의 삶을 던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거슬러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믿음의 몸부림 칠 수 있기를 바란다.
생선 연어를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연어회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회귀본능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연어는 죽을 때가 되면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는데 고향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몸에 많은 상처가 나고 굶주리지만 물살을 거스르고 곰이나 맹수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알을 낳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미물인 연어도 본성을 따라 물살이나 죽음도 불사하는데 우리 그리스도인으로 당연히 해야 되는 하나님 말씀을 적당히 지나치고 세상의 조류에 편승하여 적당하게 떠내려 가서는 안 된다. 세상의 물결을 거슬러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기 위해 믿음의 몸부림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된 삶을 약속 하신다.
신 11:29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우리 앞에 축복의 그리심 산과 저주의 에발 산이 놓여 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다 그리심 산에 서기를 원하신다. 내 생각을 따르거나 세상의 조류에 휩쓸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승리하는 모든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을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던지 그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감기가 들어 콧물을 흘리면 종이로 코를 닦아주지 않고 아버지의 입으로 코를 빨아주었다. 아들은 자라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녔고 졸업 후에도 아버지가 논과 밭을 팔아 보내주는 돈으로 허랑방탕하며 살았다. 그런 줄도 모르는 아버지는 아들이 좋은 곳에 취직하기만을 바라면서 땅을 팔아 아들이 요구하는 대로 꼬박꼬박 돈을 보냈다.
아버지가 더 이상 팔 땅도 없고 생활이 어려워지자 서울에 있는 아들을 찾아갔다. 그런데 친구들과 함께 있던 아들은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며 시골에 있는 머슴이라고 소개했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시골로 내려갔고 결국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모두 같지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서 자녀들의 인생이 달라진다. 부모가 아무리 사랑으로 헌신했더라도 자녀를 버릇없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 키웠다면 잘못된 사랑을 베푼 것이다.
아끼고 사랑하는 자녀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며 친히 본을 보이면서 필요에 따라 훈계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으로 양육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렇게 성장한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며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복 받는 인생이 될 줄 믿는다.
2. 자녀의 마음에 상처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하는 부모가 되자.
본문 4절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아비들이라는 말은 대표 격의 원리로 부모를 대신해서 아비라고 표현한 것이기에 이 말을 어버이로 이해해야 한다.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은 어버이들은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라는 말이다. 사실 가족은 대하기 편한 대상들이다. 밖에서는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여 행동하고 말을 하지만 집에 들어오면 긴장감을 내려놓고 편한 마음으로 식구들을 대한다. 자기 배우자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편한 마음에 자기 마음에 있는 생각이나 이야기를 별 의식 없이 그저 편한 대로 말한다. 그러면서 상대를 향하여 자기를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배우자는 서로가 성년이기에 자기가 힘들어도 힘들어하는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러나 자녀들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사춘기를 지나는 자녀이든지 아직 미성년의 자녀들은 부모의 말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 부모는 자녀가 어리게만 보이고 또 자기는 부모이기에 자녀에 대해서 다 알고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준다는 생각에 함부로 이야기 하기도 하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막고 자기 생각만 주입시키기도 한다. 그런 일들의 결과는 아이들이 부모님은 자기 말을 들어주려고 하지도 않고 무시한다는 생각에 아예 부모와의 대화를 거부하기도 한다. 교육은 일방적인 훈시가 아니고 상대와의 대화로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살아왔던 과거의 상황과는 너무나도 판이 하게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아이를 내가 부모에게서 교육받았던 그 기준으로 우리의 자녀 손들을 양육할 수는 없다.
그러면 자녀들의 말을 다 그대로 들어주는 것이 옳은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자녀의 기를 꺾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자녀들이 하고 싶은 대로 전혀 제재도 안 하고 다 수락해 주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본문은 자녀 양육에 대해서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하라고 권면한다.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하라는 것이다. 딤후 3:16-17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때는 교훈이고 책망의 말씀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양육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이다.
자녀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는 부모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내 생각이나 내 의도 대로 강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르게 교육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말은 듣는 우리 부모들은 마음에 큰 부담감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전도사나 목사도 아닌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다 알아서 자녀들에게 가르치라는 말인가 하고 걱정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구구절절이 다 알고 그것을 가르치라는 말씀이라기보다는 자기 자녀를 향해서 먼저 네가 누구인가 하는 신앙의 정체성을 심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신앙인으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행동하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우리 부모들이 실제적인 삶을 통해서 본을 보일 수 있기를 바란다. 자녀들에게 있어 마음 깊숙이 남아 있는 것은 부모가 한 말이 아니라 부모의 뒷모습이라는 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의 시대가 성경에서 많이 어그러진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사랑과 행복을 누리는 복된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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