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받고 싶은 교회(12)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을 대비하는 자세
살전 5:1-6절
260426주일낮설교
옛날 어느 고을에 한 부자가 있었다. 그는 나이도 많아 특별히 할 일도 없고 별다른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였지만 다만 그 고을에서 소문난 바보 한 명을 곁에 두고 바보스러운 이야기를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하루는 지팡이 하나를 바보에게 주면서 너보다 더한 바보를 만나면 주라고 말했다. 그 바보는 자기보다 더 못난 바보를 찾아 두서너 달 정도 마을을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부자는 병이 들어 거의 죽게 되어서 바보를 불러 작별을 고했다. 나는 이제 너와 헤어져야만 한다. 그러자 바보 종은 어디로 가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황천이라는 곳으로 간다고 말하자 그러면 주인님이 황천으로 가시면 언제쯤 돌아오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부자는 황천이란 곳은 매우 먼 나라이니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바보 종은 그럼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부자는 이 바보야! 준비는 무슨 준비 그냥 눈만 감고 다리를 쭉 펴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 된다고 하자 이 말을 들은 바보 종은 지팡이를 부자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 주인님! 사람이 십 리나 백 리를 가더라도 준비하는데 하물며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나면서 아무 준비 없이 떠나다니 주인님은 저보다 더 바보십니다. 그러니 주인님이 이 지팡이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누가 진짜 바보인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정말 한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말이다.
지난 시간 살펴본 살전4:13절 이하의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 상황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재림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나 당시에 살아남은 자들에 대해서 아무런 차이가 없이 다 부활하여 부활 체를 입고 주님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생 복락을 누린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재림 하시기 전 세상을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슬픔 가운데 처하지 말고 소망 가운데 재림 대망 신앙으로 승리해야 할 것을 말씀드렸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때가 가까운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은 어떤 신앙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1. 방심은 금물이다.
본문1-3절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 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때와 시기에 관하여 쓸 것이 없다는 것은 앞에 나오는 1:8절 하반 절 말씀에서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다는 말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1:8절은 너희의 믿음 생활이 모범적이어서 더 이상 어떻게 하라고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하고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니까 그때와 시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 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알 수 없어도 그날이 분명히 우리에게 임하기에 언제 올지 모르는데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방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방심하다보면 돌이킬 수 없는 큰 어려움을 당하는데 본문에서는 도둑 맞는것과 임신한 여인의 갑작스러운 출산에 비유하고 있다.
깊이 잠들어 있는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도둑이 와서 도둑질하고 해산의 날이 갑자기 임하는 것같이 주의 재림도 그렇다고 비유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으로 성경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천 년 전의 상황에서는 도둑을 막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의료시설이 아주 열악했던 시절에 갑작스러운 출산을 대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의 주된 요지는 방심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마 24:36절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성경은 그 시기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 비밀스러운 사실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모든 일들에 있어서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것은 관심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대단한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자기의 생각을 덧붙여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호들갑을 떤다. 그러면서 막상 그 일을 실행하는 순간에는 얼굴을 찾아볼 수도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말 많은 사람보다 기도하며 묵묵히 맡겨진 일을 충실히 감당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도 성경은 침묵하고 있는데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그 시간에 대해서 계시를 받았다고 호들갑 떨었지만 결국 다 바람같이 사라질 뿐이었다. 사탄은 우리를 방심하게 만든다. 예수님의 재림 시간은 몰라도 성경의 약속대로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에 대해서 부인하지 않게 한다. 그러나 그것이 당장 일어나는 것이 아니니까 우선 세상의 급한 것부터 해야 되지 않겠냐고 유혹한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예전의 국민하고 시절에는 여름 방학이 아주 길었다. 방학이 길다는 생각에 친구들하고 노느라고 숙제나 일기는 뒤로 제쳐놓고 눈만 뜨면 노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엄마가 숙제하고 놀라는 소리에 책상 앞에 앉았지만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해야 할 숙제는 내일 해도 되니까 하는 마음으로 밖으로 뛰어나간다. 하루는 엄마의 호된 꾸중이 있었다. 내 일 모레가 개학인데 숙제를 다 했냐는 것이다. 그 소리에 달력을 보니 개학이 가까웠다. 그러면 그때부터 밀린 방학 숙제와 일기를 쓰는데 매일 한 일은 대충 비슷하게 쓸 수 있겠는데 날씨는 헷갈린다. 어떤 친구들은 아예 포기하고 학교 가서 매를 맞는 것으로 때운다고 배짱을 부리는 친구도 있고 또는 가족이 동원되어 숙제를 완성해서 겨우 학교에 가기도 한다.
이것이 어렸을 때의 모습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때가 주님이 승천하신 지 이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하는 방심하는 마음으로 눈에 보이는 세상에 집중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이나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멀리 있는 것처럼 안일한 자세로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본문은 경고하고 있다. 방심은 금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성도들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
2.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본문 4-6절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본문에서 우리의 신앙 정체성에 대해서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로 묘사하고 있다.
4-6절의 말씀에서는 빛과 낮에 대비되는 표현으로 어둠과 밤이라는 말로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하면 빛과 낮의 아들인 성도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둠과 밤의 세상에 비유되고 있다.
본문에서는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다고 하는데 성경에서 어두움이라는 말을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들을 나타내는 상징적 비유로 사용되고 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당연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적 무지함이 있고 또한 당연히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다. 더 나아가 영적인 세계나 영적인 실체들에 대해서 눈먼 시각장애인 같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절박한 멸망이 임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두움에 처한 자들의 영적 무지함에 대해서 마치 정신없이 깊은 잠에 빠져 도둑이 드는 것도 모르고 자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도둑맞은 것을 알게 되지만 때는 이미 늦은 것으로 비유한다.
그러나 성도들을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로서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않는다는 표현은 마치 한낮에는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고 깨어 있기에 도둑이 은밀하게 틈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6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리라는 말씀을 문자적인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깨어 시대를 바라보며 죄악과 어둠의 세상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의 모습은 신앙인으로 합당한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있다는 말은 서로 같은 말로서 이것은 성을 지키는 파수꾼 즉 보초에 대해서 사용되고 있는 말이다. 시127:1절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겔 34:7절에서도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다고 말씀하신다. 파수꾼은 자신이 지키는 성에 적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깨어 있어야 하듯이 주의 재림을 사모하는 성도 역시 언제 주의 재림이 임할는지 경각심을 가지고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재림이 지금 당장 임하지는 않는다 해도 그 일이 멀리 있는 것처럼 여유를 부리고 불필요한 일에 관심을 보이며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또한 성도로서 자신의 현재 적 직무에 대해서 나태하거나 게으름이 아니라 각성하여 늘 준비해야 할 줄로 믿는다.
성경은 성도의 삶이 현세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내세에 완성된다고 말한다. 우리 인생은 한 번 살다가 끝나는 인생이 아니기에 내세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임신한 여인들이 태아를 위하여 온갖 태교를 한다. 음식도 조심하고 태아에게 유익한 것들을 하느라고 모든 신경을 태아에게 집중한다.
그것은 뱃속의 태아가 건강하게 잘 먹고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다 보면 태어난 아이는 이땅에서의 삶을 강건하게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임산부가 담배를 피고 술 마시고 마약하고 태아에게 좋지 못한 것을 보고 들으면 아이에게 치명적인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어머니 태 속에서의 준비가 이 땅의 8-90 년의 생을 잘 살 수 있게 한다면 내세의 영원한 삶을 위한 이 땅 위에서의 준비는 더 필요하다. 잘 준비하지 못한 사람의 내세가 복 되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그래서 성도는 이생을 사는 동안 내세를 어떻게 잘 준비해야 하는 지 생각해야 한다.
마치 기드온의 삼백 용사들이 물을 마실 때 무기도 버려둔 채 주위를 살피지도 않고 정신없이 머리 숙여 허겁지겁 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한 손에는 무기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물을 떠서 마시며 주위를 살피는 모습처럼 온 세상이 죄와 흑암으로 가득 차 있다 할지라도 영적으로 늘 깨어 있기를 바란다.
한 손에는 경각심을 가지고 또 다른 한편 손에는 근신하는 자세로 늘 깨어 오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우리가 주 앞에 섰을 때 잘했다고 칭찬받는 삶이 되도록 준비하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사탄은 우리를 향해 안전하다 평안하다고 미혹해도 현세를 바라보며 각성하여 죄악 된 세상에서 성도로서 깨어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모든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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