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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고 싶은 교회(17) 거룩함과 거룩한 교제를 힘쓰는 교회
2026-07-04 09:06:18
사무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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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고 싶은 교회(17)

거룩함과 거룩한 교제를 힘쓰는 교회

살전 5:23-28

260628주일낮설교

사랑하는 연인에게 있어서 금기어는 바로 양다리를 걸친다는 것이다. 연인들은 오직 서로만 바라보아야 사랑이 유지되고 또한 그 사랑이 아름다워진다. 결혼한 뒤에 이 사랑은 신뢰를 기반으로 더욱 온전하게 된다. 아내를 사랑하면서 다른 여인을 마음에 품어서는 안 되고 아내 또한 다른 남자를 욕심내서도 안 된다. 남편은 아내만을 바라보고 아내는 남편만을 생각하는 것을 정절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사랑하기도 한다. 윗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더 나아가 그들을 존중하는 것인데 이것을 존경이라고 한다. 윗사람에 대한 사랑법에는 반드시 존경이 따라야 한다. 우리는 자녀를 사랑한다. 부모로서 자녀를 사랑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아이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고 아플 때 간호하고 돌봐준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함께 고민해 주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아낌없이 지원해 준다. 이런 자녀에 대한 사랑을 책임이라고 한다.

남녀 간의 사랑법은 정절이고 어른에 대한 사랑법은 존경이며 자녀에 대한 사랑법은 책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법은 다름 아닌 바로 거룩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북유럽에 가면 하얀 담비라는 동물이 있다. 한때 그 털이 고급 모피로 각광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냥꾼들이 이 흰담비를 잡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흰 단비가 자기 굴에서 나오면 굴 입구에다가 오물들을 갖다 둔다. 그러면 굴을 나왔던 흰 단비가 다시 굴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앞에 멈춰 서버린다는 것이다. 그때 사냥꾼은 흰담비를 쉽게 잡을 수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오물에 의해서 그 털이 더럽혀지느니 사냥꾼에게 잡히는 것을 택하는 것이 흰담비의 특성이라는 말이다. 성도의 삶도 그래야 한다. 세상의 온갖 것으로 더럽혀지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신앙의 단호함이 있을 때 우리의 삶이 거룩함을 유지 할 수 있다. 세상과 적당히 어울려 살아가면서 거룩해지기를 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아 거룩해지기를 힘써야 한다.

오늘 본문은 데살로니가전서의 마지막 결론적인 부분으로 지금까지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신앙에 있어서 잘한 것들과 또한 신앙에서 어긋난 부분들에 대해서 권면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 대해서 더 이상 어떻게 하라고 권면하거나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 교회 였지만 바울은 마지막으로 두 가지 요소를 언급하면서 막을 내리고 있다.

결론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살피며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1.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아 거룩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분문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오늘 본문에서 거룩하게 하시고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우리 의지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말인데 성도 된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기 때문이다.

살전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라고 할 때 이 말은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나타내는 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소원이 있음을 말씀한다.

6:39-40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밝히시는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 것이다. 내게 주신 자중에라는 말은 하나님이 택하여 구원하기로 작정 된 사람들을 말한다. 예수님은 이들을 위하여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다가 하나님의 때에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나의 죄를 대신한 대속의 죽음이라는 것으로 믿을 때 구원이 이루어진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 자체를 말씀하시고 있지만 바울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구원받은 성도라면 신앙생활 속에서 당연히 이루어 가야 할 거룩한 생활 즉 삶에 대해서 말한다.

벧전 1:15-16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성도 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부르심은 거룩한 삶으로의 부르심이다. 나는 구원받았으니까 이젠 내 맘대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하신 하나님의 말씀처럼 우리도 이 땅을 사는 동안 하나님을 따라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아들이 아버지를 꼭 빼닮았어 라는 말이든지 딸이 엄마와 판박이야라는 말을 들을 때 그 부모는 속으로 기분이 좋다. 자녀는 부모를 닮을수 밖에 없는데 외형은 닮아도 내면은 자기를 닮지 말기를 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잘 보면 자식은 부모를 거의 그대로 빼닮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아버지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닮아야 한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라 거룩한 성도가 되어야 할 줄 믿는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라는 말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다시 말하면 거룩하게 되는 것이 나의 힘씀과 노력은 전혀 들어가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께서 나를 거룩한 성도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중생 즉 거듭나는 것은 우리가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었기에 다시 살아나는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로만 가능하다. 그러나 중생한 성도는 이미 예수의 생명이 우리에게 임한 상태이기에 우리가 거룩한 성도가 되는 것에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필요하지만 우리의 의지나 노력도 동반되어야 한다.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전적으로 다해 주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은 거룩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생활에 더욱 힘써야 한다.

거룩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따로 구별되었다는 것이고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고 평생을 통한 끊임없는 과정이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기대가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때를 암시하면서 그것을 본문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라고 말한다.

구원받은 우리가 마침내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까지 이 땅에서 평생 노력해야 하는 과제가 바로 이 거룩 또는 성화의 과제인 줄 믿기 바란다. 살아가는 동안 수시로 우리는 그런 주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실패와 넘어짐을 반복하지만 그럴 때도 주님의 도우심을 믿고 일어나 거룩한 삶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가장 큰 기대고 소원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우리 가운데 거룩한 신앙의 교제를 이루어야 한다.

 

본문 26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서로 교제하라는 말이다. 거룩한 이라는 단어는 이 입맞춤이 낭만적 사랑의 표현으로가 아니라 동료 성도들을 향한 구별된 성도의 사랑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오늘 우리 상황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이러한 인사의 방법들이 시행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형식적으로 치우치게 되었고 그래서 바울은 그 안에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안부를 물으며 서로 교제하라고 말한다.

서로 교제의 대상은 모든 형제여야 한다. 나와 가까운 관계나 내 마음에 드는 사람끼리만 모이고 서로 교제해서는 안 된다.

 

고린도 교회가 그룹을 지었다. 나는 게바파 나는 바울파 나는 아볼로파 나는 그리스도파로 나뉘어 있었기에 바울은 이것을 책망하며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라고 책망한다.

고전 1:11-12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하나님도 한 분이시고 성령도 한 성령이고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 들도 하나님이 하신 것처럼 하나 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성도가 거룩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듯이 모든 성도가 하나 되고 서로 사랑의 교제를 이루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반대하시는 분열과 나뉘어짐과 서로 파당을 짓는 것은 사탄이 원하는 일이다. 사탄이 들어가면 거기에는 서로 다툼과 분열이 난무하고 시끄러운 소음만 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서로 웃음이 끊이질 않고 누구와 만나 이야기해도 즐겁고 마음이 흐뭇해진다.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기를 원하시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순 모임이 이러한 모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순모임에 모이는 두세 사람만 계속 모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찾아서 함께 모이기를 힘쓰며 그 가운데 사랑의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잘 아는 사람하고만 교제하지 말고 거리가 있는 사람에게 먼저 인사하며 문안할 수 있기를 바란다,

좋은 교회 좋은 성도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것이 아니다. 드러난 허물을 오히려 감추어주는 사람이다. 성도 중에서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또한 불완전한 성도들이 모인 교회가 어찌 허물이 보이지 않겠는가? 눈에 보이는 허물을 있는 그대로 들추어내는 것은 그 모습이 자기 모습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성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가리어주고 오히려 용납하려고 힘쓰는 모습은 거룩한 성도의 모습이요 교회 공동체를 사랑이 넘치는 교제의 장으로 만들어 가는 성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아 거룩한 성도의 모습을 이루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와 그 안에 모여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성도 간에 아름다운 신앙의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귀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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