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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고 싶은 교회(19) 역경의 파도를 넘어 행복의 안식처로
2026-07-29 11:07:41
사무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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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고 싶은 교회(19)

역경의 파도를 넘어 행복의 안식처로

살후 1:6-12

260726주일낮설교

서양 속담에 흐르는 시냇물에서 돌들을 치워버리면 그 냇물은 노래를 잊어 버린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인생에 역경과 고난의 돌을 치워버리면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없게 된다.

손가락이 넷인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는 장애인으로 정상인도 어렵다는 쇼팽의 즉흥 환상곡을 열정적으로 연주한다. 강연장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손을 번쩍 들어 주먹을 꽉 쥐라고 주문하면서 “You can do it(할 수 있다)”를 선창하면서 따라 하게 한다. 조그마한 왼쪽 다리 하나뿐이고 양팔이 없는 세계적인 가스펠 가수 레나 마리아는 난 팔과 손이 없어서 반지나 장갑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의 한 명인 오프라 윈프리는 미혼모였으며 뚱뚱했고 흑인이며 성폭행당했으며 사생아며 가난한 자였다. 그녀는 자신을 가로막았던 아픔들을 한마디 말을 반복하며 이겨냈다고 한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머리와 몸통 그리고 발가락이 두 개뿐인 닉 부이치치는 그는 지금도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등 세계를 다니며 행복을 전하는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저는 백 번이라도 다시 일어나려고 시도할 것이다. 라며 아직도 기적을 믿어요. 하나님은 제게 위대한 사명을 주셨어요. 저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했다.

어려움을 이길 힘은 자신이 스스로 가치 있다고 느끼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가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느니라.’고 말씀하신다. 비록 우리의 삶이 가시밭길 같을지라도 그 길은 끝이 막혀 있는 깊은 동굴이 아니라 밝은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는 터널과 같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다윗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한 우리가 죽음의 계곡 속으로 떨어진다 해도 그 가운데서도 안전하게 보호함을 얻게 되는 줄 믿는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기 자녀들을 방치하시지 않으시고 절대적으로 보호하시며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기 바란다.

본문은 박해와 핍박 가운데 있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하여 바울이 격려하고 있는 내용이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당면했던 어려움들은 성도들이 무엇을 잘못해서 그 대가로 받는 형벌이 아니었다. 앞서 5절에서 언급했듯이 그들이 당하는 환난이나 핍박 같은 어려움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공의로운 심판이다. 무엇을 잘못했다든지 내지는 운이 없어서 그런 어려움을 만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하심이 있는 어려움이라고 하면서 위로하고 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택한 자기 백성들을 어떻게 인도하고 계시는가를 살피며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1.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본문 6-7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다른 번역 성경 하나님은 공정하셔서 여러분을 괴롭히는 자들에게 괴로움을 당하게 하시고 괴로움을 당하는 여러분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을 누리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 일은 주 예수께서 당신의 능력 있는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서를 다루면서 나타나고 있는 특징적인 요소가 바로 환난이다. 교회가 태동 될 때부터 마주한 현실은 유대인들의 시기와 미움으로 인한 박해였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의 박해를 견디고 있는 것뿐 아니라 로마 당국으로부터의 어려움도 있었다. 당시 로마 황제는 글라우디오 때였고 황제 숭배 사상 거부로 인한 심한 핍박을 견뎌야 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를 칭찬 했지만 그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신앙관이 곧 임할 예수님의 재림 대망 사상이었다. 아마도 데살로니가 교회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긴박한 관심과 현실 도피적인 극단적 신앙을 갖게 된 것이 그들이 처한 힘들고 고통스러운 현실 때문이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형태는 다르지만 성도가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여유롭고 적당히 즐기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영적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잠시 내어주신 바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성도가 세상을 살아갈 때 사탄에게 속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어 있다. 성도가 자기의 본분을 망각하여 세상과 짝하여 살거나 적당히 어울려 살아가고자 하면 오히려 어려움이 없이 그저 평안하게 지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복된 삶이 아니라 멸망으로 떨어지는 지름길이다. 여름철이 되면 모기를 위시한 많은 벌레가 출몰한다. 그 가운데 불나방은 어두운 밤하늘에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면서 휘황찬란한 불빛을 따라 불 속으로 들어가서는 헤어 나오지 못하고 타 죽게 된다. 세상이 우리를 현혹하며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세상 속으로 빠져 들어 갈 때 그것은 죽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성도의 바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우리의 삶의 현장은 많은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공의라는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선악의 체재를 공평하고 의롭게 하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품성으로 되어 있다.

 

공정하신 하나님은 믿음으로 환난을 당하는 자에게는 하나님 나라를 얻게 하신다. 그리고 성도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시다. 다시 말하면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성도의 고난과 관련하여 성도를 핍박하는 자에게 각각 공평하고 의롭게 보응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부조리를 바라보며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하며 안타까와 한다. 세상에 악이 득세하고 잘못된 일들이 비일비재한 가운데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면 이런 상황에 대해서 왜 침묵하시며 묵과하고 계시는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어려움 속에 있었던 시편 기자들 특히 다윗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의 침묵하심에 대해서 하나님이시여 더 이상 침묵하지 말아 달라고 애타게 간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서 우리가 일일이 다 헤아릴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기에 유한하고 편협한 인간의 생각으로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을 판단할 수 없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시며 판단하시는 하나님이기에 우리는 묵묵히 하나님의 공평하신 판단을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판단자가 되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인식하여 하나님께 맡기며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나에 대해서 악한 말을 하며 비방할지라도 내가 나서서 대꾸하고 똑같이 대하는 것이 아니라 참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판단을 바라보는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최종적인 승리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본문 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에 그의 판단은 결코 오류나 어긋남이 없다. 공정하신 하나님은 잘한 사람에게는 상으로 잘못한 사람에게는 벌로 갚으신다. 그러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보상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한가지씩 할 때마다 평가하시고 보상하지는 않으신다. 공의로운 보상의 때는 마지막 날에 이루어진다.

7절 하 반절-9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주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악한 자들에게는 영원한 멸망의 형벌이 주어진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고 신앙생활을 잘한 성도들에게는 본문 12절의 말씀처럼 주님 안에서 영광이 주어질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을 확신한 바울은 그 믿음으로 평생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했다.

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미국 메릴랜드의 한 마을에 남루한 복장의 아르바이트 학생이 나타났다. 서적 외판원인 이 청년은 더위와 굶주림에 지쳐있었다. 그는 마을 입구의 허름한 집을 방문했다. 한 소녀가 학생을 맞았다. 그녀는 미안해요. 우리는 너무 가난해서 책을 살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우유 한 잔을 부탁했다. 그러자 소녀는 얼른 주방으로 달려가 시원한 우유 두 잔을 내왔다. 단숨에 우유 잔을 비운 그는 이 소녀의 친절에 무한 감동을 느끼고 수첩에 그녀의 이름을 적어두었다. 20여 년 후 메릴랜드 병원에 한 여성 중환자가 급하게 실려 왔다. 병원장 하워드 켈리 박사는 의사들을 총동원하여 환자를 살려냈다. 그러나 퇴원할 때 이 여인은 1만 달러가 넘는 치료비 청구서를 받아 들고 한숨을 토했다. 그런데 청구서 뒤에는 병원장의 짤막한 메모가 한 장 붙어 있었다. “20년 전에 저에게 대접한 우유 두 잔이 치료비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평소에 주면서 살면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

이 땅에서 받지 못한 보상을 하늘에서 밝히 드러날 것이다. 선행은 감추어진 것일수록 더욱 아름답다.

사람들에게서는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잊지 않으시고 보응 하신다.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생전에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것 하나까지도 마지막 날에 우리 주님은 다 기억하시고 보상해 주시는 줄 믿고 주님의 심판대를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보상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누나가 착한 동생에 대해서 고마워하며 선물하는 것과 엄마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선물해 주는 것이나 대기업의 총수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주는 특별 선물은 다 각기 차이가 있다. 세상이 주는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상급을 소망하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너무 조급함으로 일을 그르칠 때가 많이 있다. 조급함이 아니라 인내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한 것들을 다 기억하시며 보상해 주신다.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의 평가를 바라며 주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귀한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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