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으로
왕하 6:14-17절
260621주일설교
캐나다 동부의 토론토시에 수족관을 세울 때였다. 서부 해안에 서식하는 어류도 필요했기에 밴쿠버에서 어류를 기차로 수송하기로 했다. 커다란 금속 어항에 해수 교환 시설과 산소 공급 장치를 갖춰 옮겼지만 일주일 만에 도착한 물고기 중 상당수가 죽어있었다. 어류학자들이 여러 차례 방법을 검토하고 시도 했는데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고심 끝에 전문가들은 어항에 큼직한 문어를 한 마리 넣었다. 슬금슬금 움직이던 문어는 물고기들이 잠들 만하면 툭툭 건드렸다. 물고기들은 이리저리 쫓기느라 잠들 수 없었고 그렇게 대부분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알고 보니 바다에서는 늘 큰 물고기에게 쫓기며 살아가던 어류들이 아늑한 어항에 들어오자 안심하고 잠들었고 오히려 죽음으로 이어졌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너무 편안해서 영적으로 잠들면 그 신앙은 죽고 만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고난이라는 문어를 넣어 잠들지 못하게 연단하시기도 한다. 기독교는 핍박 속에 성장했고 순교의 피를 흘린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다.
우리의 삶에 고난이라는 부분을 삭제하거나 멈추게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실상 우리의 삶은 고난이라는 지뢰밭을 늘 조심스럽게 지나가야만 한다. 조심하지만 예기치 못하다가 밟은 고난의 지뢰가 폭발하면 우리의 삶의 일부분이 어지러워진다. 고난의 위기를 만나면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고 헤쳐 나가야 하는데 방법은 상황을 바라보는 육신의 눈이 아니라 믿음의 눈을 뜨고 하나님을 찾고 바라보는 것이다.
본문에서 아람 지금의 시리아는 북이스라엘을 침략하기 위해 작전을 펴면 침략을 미리 안듯 북이스라엘이 대비 태세를 갖추어 번번이 실패하게 된다. 아람은 왜 공격에 실패했는가를 살피는 가운데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어서 아람의 행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미리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 주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치기보다는 먼저 엘리사가 있는 도단 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성을 에워쌌다. 그 광경을 엘리사의 사환이 보고 공포에 질려 엘리사 선지자에게 급히 보고했다.
삼하 6:15절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는데 절망은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무기다. 그래서 이 절망이라는 무기로 사람을 공격해서 넘어지게 한다. 문제를 만나면 사람이 육신을 가지고 있기에 육신의 눈이 먼저 작동하여 판단하고 머리로 보고하면 사람의 생각은 두려움과 공포에 질리게 된다. 사람의 생각으로 해결책을 간구하지만 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결국 절망에 이르게 된다.
사람으로 하여금 절망으로 빠트리는 것이 바로 마귀의 계략이기에 마귀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본문의 말씀을 살피며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1. 육신의 눈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세상일.
삼하 6:15절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앞에서 말씀했듯이 아람 나라의 침공 사실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었다. 사환이라고 하니까 낮은 직급의 하잘것없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엘리사 선지자와 한솥밥을 먹으면서 지내며 선지자의 신앙 업무를 도왔던 사람으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의 사람 선지자가 믿음의 일을 행할 때 믿음이 없거나 불신의 사람과 함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믿음이 있었던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도 어려움을 만나자 두려움과 심한 공포심을 갖게 되었다. 믿음의 사람은 어려움을 만나거나 고난의 터널을 지나갈 때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해서는 안 되는가 하는 것이다. 대하 17:1절에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19장에는 여호사밧의 개혁이 기록되어 있다. 대하 20장에 보면 유다에 위기가 찾아오게 된다.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이 함께 여호사밧을 치기 위해서 공격해 왔다는 사실을 보고 받게 된다. 이 소식을 듣게 된 여호사밧이 3절에 보면 두려워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호사밧은 다윗에 버금가는 신앙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신앙이 훌륭했지만 역시 그도 연약한 인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적의 연합군이 공격 해 왔다는 소리를 듣고 육신 적인 생각이 앞섰다. 유다는 적은 나라였기에 연합해서 공격하는 적의 군대를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인간적인 판단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방법이 없다. 방법이 없다고 판단하면 그다음부터는 걷잡을 수 없는 공포와 위기감 속에 두려워할 수밖에 없고 그 두려움은 절망으로 바뀌게 된다.
우리의 눈으로 보고 인식하는 것들이 다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판단이 분명한 사람이다. 그래서 자기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들이 다 정확하고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자기 앞에 어떤 문제를 만나게 되면 자기 생각이나 판단으로 헤아려보며 해결책을 찾아 보지만 인간의 능력은 너무나도 연약하고 보잘 것 없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던 땅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가나안 땅으로 이동했다. 세겜에 머물면서 벧엘 동쪽 편에 장막을 쳤다. 그리고 점점 남방으로 옮기는 가운데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멀리서 찾아왔는데 그 땅에는 이미 가나안 족속들이 거하고 있었고 그들을 피하여 점점 밑으로 옮기는 가운데 심한 기근이라는 어려움을 당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왔으면 있던 어려움도 없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문제가 발생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애굽에 가면 곡식도 있고 거기에는 큰 강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것저것 따질 필요도 없이 애굽으로 가는 것 만이 살길이라고 판단했다. 자기 판단대로 움직이면 기근으로 인한 배고픔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먹는 것은 해결되었을지 몰라도 또 다른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인간적으로는 가정이 깨어지는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사라를 통한 아브라함의 후손을 이루실 하나님의 역사가 깨지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를 행하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건져주시고 아무 탈 없이 그곳을 나와 네게브로 올라오게 되었다.
주어지는 상황을 다만 눈에 보이는 판단에 따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과 머리로 생각하는 판단이 다 옳은 것만은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안개 속과 같은 세상에 믿음의 전조등을 켜라.
삼하 6:16절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주어지는 상황을 육신의 눈으로 보고 판단했을 때 두려워 했다.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있는 게하시에게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무슨 배짱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는가 하면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게하시는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판단 했지만 엘리사는 주어지는 상황을 믿음의 눈으로 판단 했다. 엘리사는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두려워하고 있는 사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우리와 함께 한자가 적들의 숫자보다 더 많다고 위로 한다.
엘리사는 연약하여 두려워 떨고 있는 사환을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한다.
본문 17절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하나님께서 엘리사 선지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사환의 눈을 열어주셨다. 엘리사의 사환이 믿음의 눈이 열려 사방을 둘러보다가 놀라며 이렇게 고백한다.
17절 하반 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엘리사의 사환은 처음에 육신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았을 때 보이지 않았던 것이 엘리사의 기도로 믿음의 눈이 떠지고 나니 육신의 눈으로는 안 보이던 하나님의 군대를 보게 되었다.
우리에게 인생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육신의 눈’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다윗은 수많은 고난과 삶의 위기를 만났을 때 자기의 생각이나 판단을 따르지 않았다. 다윗에게 닥친 어려움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극한 위기였고 손을 쥐게 하는 드라마 틱한 극한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하나의 순간이 지나면 평안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연속적인 어려움이 계속되었다. 숨어 있는 동굴 속에 사울이 찾아 들었다. 아차 하는 순간이면 굴속에 숨어 있던 다윗 일행은 사울에게 발각될 수 밖에 없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 땅에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서 적국인 블레셋으로 도피했다. 그런데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이 다 아는 사람이었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패전한 블레셋은 다윗에 대해서 이를 갈고 있었을 것이다.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피해 적대적인 국가로 피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우를 피해 간 곳이 호랑이 굴이었다. 도망 다니는 다윗의 삶의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육신의 눈으로 판단하여 자살의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방법이 없고 길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위기의 순간에 사람을 의지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했다.
시 18:2절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믿음의 다윗은 위기의 순간에 자기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보다 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시 18:6절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벧전 3:12절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주의 눈은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의미하며 주님의 귀는 자기 백성들의 간구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다. 주의 얼굴은 악인을 향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의 심판을 뜻한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자녀들의 간구에 응답하시는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신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고 반대하며 주님의 일을 훼방하는 악한 행위에 대해서는 의의 심판을 행하신다.
우리의 삶은 예측불허의 순간을 지날 때가 많이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지고 우리의 보호자 되시며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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