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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고 싶은 교회(22) 기도의 후원이 불필요한 사람은 없다
2026-08-18 09:49:17
사무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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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고 싶은 교회(22)

기도의 후원이 불필요한 사람은 없다

살후 3:1-5

260816주일낮설교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손꼽히는 사람이 성 어거스틴이다. 어거스틴이 이 땅에 위대한 역사를 이루기까지 그의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를 잊을 수 없다. 경건한 기독교 가정에서 출생하여 믿지 않는 이교도 가정으로 시집간 모니카는 늘 집에서 성경을 보면서 기도하기에 힘썼다. 그리고 어린 아들 어거스틴이 하나님 뜻대로 살기를 간구하며 늘 말씀을 가르쳤다. 그런데 17살 때 카르타고로 유학을 떠나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있다 보니까 세상 향락에 빠지고 이단에 빠졌다. 마니교라고 하는 이단에 빠지고 방탕한 삶을 살아서 거기 있는 자매와 결혼도 하지 않고 애를 낳고 이런 이야기가 들려올 때 어머니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매일 같이 교회에 와서 눈물로 기도했다. 우리 아들 잘되게 해달라고 우리 아들 하나님이 붙들어 주셔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때 그 교회의 담임목사인 암브로우스 주교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눈물의 아들이 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눈물의 아들이 망하는 법이 없다. 눈물로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그 자녀의 일생은 하나님의 복 받는 일생으로 변화될 것이다. 마침내 어머니의 눈물 어린 기도로 그가 긴 방황을 마치고 32살 되던 해 집 떠난지 15년 만에 돌아와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리고 신학을 한 후에 북아프리카 히포라는 곳에 가서 평생 목회하면서 많은 신학 저서를 썼다. 그는 어머니 모니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제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되었다면 그것은 오직 아버지께서 제게 이런 어머니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신실한 여종인 나의 어머니는 보통 어머니들이 죽은 자식을 위해 우는 것보다도 살아 있는 나를 위해서 더 울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늘 기도하시던 곳은 바닥이 눈물로 흥건히 적셔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식을 위해 흘린 눈물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그 눈물을 멸시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세상에 자녀를 향한 부모의 눈물 어린 기도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세상에 모든 사람은 다 연약하기에 다른 사람들의 기도의 후원이 필요하다.

 

본문에서는 위대한 사도였던 바울도 기도를 요청하고 있는데 바울과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바울은 그들의 영적 아비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했고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영적 지도를 계속해 왔다. 그러므로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만 어떻게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을 위해서 기도 할 수 있겠는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교만하여 우쭐거리지 않고 겸손하게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기도의 후원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 우리가 누구를 위하여 기도해야 할 것인가를 살피며 다른 사람들을 향한 기도가 풍성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1. 영적 거장도 연약한 존재다.

 

본문 1-2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본문 1절에 보면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이라고 말하고 있다.

너희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말하고 있고 우리를 위하여 할 때 이것은 바울 일행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다. 일반적인 성도가 근접할 수 없을 정도의 위대한 영적 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위대한 영적 거장도 연약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기도의 후원을 요청하고 있지만 자기 개인의 유익과 안위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2가지 기도 제목을 제시하면서 기도요청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같은 내용의 기도 제목이다.

먼저 1절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주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퍼진 것 같이 속히 퍼져서 영광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2절에서는 심술궂고 악한 사람들의 손에서 우리가 벗어나게 되도록 기도해 달라는 내용이다.

이것은 바울 자신을 위한 육신의 필요를 따라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바울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요청하고 있다. 우리의 기도는 대부분이 육신 적인 기도 제목을 나열한다. 물론 우리 육신을 위한 기도는 쓸데없고 하찮은 기도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이 육신 적인 것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바른 자세는 영적인 것을 감당하기 위하여 필요한 육신 적인 간구가 되어야 한다. 물질을 구하거나 건강을 위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며 하나님의 영광과는 전혀 관계없이 이 땅에서 사는 육신만을 위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 제목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바울은 먼저 복음이 사람들에게 신속히 퍼져 나가게 되기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복음 전파는 바울에게 있어서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확신하며 그 일에 총매진했다. “퍼져나가 영광스럽게 되고라는 말의 의미는 마치 힘차게 내달려 우승함으로써 상을 얻는 것과 같은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초대교회 때에 그리스에는 올림픽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물론 경기 종목은 지금의 올림픽과는 많이 다르지만 지금과 같이 시행되고 있는 종목이 마라톤이었다. 마라톤이 올림픽 경기의 하이라이트로 맨 나중에 실시되었으며 1등으로 들어온 선수를 향하여 모든 관중이 기립하여 환호하고 시상대에서 월계관이 씌어졌다. 마라톤 선수들은 그 영광을 생각하며 끝까지 전력을 다하여 달음질했다. 퍼져 나가는 복음의 확산이라는 것은 천천히 어슬렁거리는 나무늘보의 모습이 아니라 먹이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사자의 모습과도 같다고 비유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가 바울의 열심으로만 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성도들의 절대적인 기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기도를 요청하고 있다.

더 나아가 2절에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자들에게서 건져달라는 기도는 육신 적인 안위를 생각하며 위험에서 건져달라는 기도처럼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부당하고 악한 자는 사람이 아니라 악한 사람들을 조정하고 있는 배후 세력인 사탄을 말한다.

나에 대해서 악하게 대하는 사람은 그 본성이 악하다고 보기 보다는 그 사람을 악하게 사용하는 사탄의 배후 세력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을 미워하기 보다는 그를 조정하고 있는 사탄의 간계가 그에게서 떠나기를 위해서 기도하며 그 사람에게 내 마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려고 할 때 상황은 바뀌어 질 수 있다. 이런 사탄의 간계는 개인의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나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서도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사탄이 교회를 무너뜨릴 수는 없어도 공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평안함을 지속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해야 할 줄로 믿는다. 바울이 부당하고 악한 자들에게서 지켜 달라고 기도 하는 것은 사탄의 간계로 바울의 선교 사역에 악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할 때 가장 우선시되는 목표가 바로 교회의 목사와 장로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막연히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기보다는 목사와 장로가 서로 같은 마음을 가지고 주의 몸된 교회를 겸손과 사랑으로 잘 섬길 수 있기를 위해서 힘써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기도 후원에는 예외 상황이 없다.

 

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5절의 의미는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인도하셔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 주시고 그리스도의 인내를 본받게 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기도 제목이다.

바울은 자신만을 위한 기도 제목을 말하지 않고 모든 성도를 위한 기도 제목을 말하고 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식지 않고 더욱 뜨거워지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은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자기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중심을 헤아리시는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있다고 책망하신다. 이 차이가 무엇인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우상도 섬기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기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항변하고 있다.

사랑은 한 사람이 여러 명과 함께 할 수 없다. 사랑은 오직 일대일의 관계여야 하며 그 마음 중심이 중요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제사 드릴 때 값비싼 제물을 사용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이다. 우리가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세상의 것들에 우리 마음을 빼앗기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것들 가운데 하나님을 우선 적으로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세상에서 우리 마음을 유혹하는 많은 것들이 있어도 하나님만을 구별하여 우선 적으로 섬기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귀한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신앙생활에 중요한 또 한 가지는 소망을 바라보는 성도들은 이 땅에서의 신앙생활 속에서 인내해야 한다. 인내는 한두 번 참는 것을 인내라고 할 수 없다.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인내를 본받게 해 주시기를 기도 제목으로 제시한다. 예수님도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심이 그에게는 수치와 고난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피 흘려 죽으셨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시기까지 인내하심은 우리에게 본을 끼쳐 따라오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복을 말씀하셨지만 속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아들에 대한 약속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 25년을 기다리게 하셨다. 번성하게 되는 복은 무려 500년이 지난 뒤에 이루어졌다. 6:14-15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으로 약속하신 것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인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목사와 장로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옆에 있는 성도는 남이 아니라 우리의 한 가족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도의 후원에는 예외 사항이 없다는 것을 바로 인식하여 모든 사람을 향하여 믿음으로 힘써 기도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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