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 설교    >    설교

설교

눈으로 보고 삶으로 이어지는 은혜
2026-10-31 09:02:40
사무실1
조회수   5

눈으로 보고 삶으로 이어지는 은혜

고전 11:23-29절

261025주일낮성찬설교

미국의 한 유명한 신경학자가 쓴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치매 증상이 아주 심해서 자기 이름도 모르고 평생을 함께 산 아내와 자녀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노신사가 있었다. 기억의 끈이 완전히 끊어진 것 같았던 이 노신사에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평생 좋아했던 오래된 찬송가를 들려주거나 어릴 적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음식 냄새를 맡을 때 였다. 순간적으로 눈빛이 살아나며 여보 라고 부르며 얘들아 하고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우리의 뇌 속 깊은 곳에는 머리의 기억을 넘어 가슴과 오감으로 기억하는 ‘사랑의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적인 상태도 이와 같을 때가 있다. 세상의 염려와 근심 바쁜 삶에 치이다 보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영적 치매 환자처럼 살아갈 때가 많이 있다. 머리로는 예수가 구원자이심을 알지만 가슴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

오늘 주님께서는 영적 망각 속에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특별한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바로 거룩한 성찬 식이다. 종교 개혁자 존 칼빈은 성찬을 가리켜 눈으로 보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다.

오늘 우리는 이 떡과 잔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먹으므로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다시 한번 새롭게 하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말씀을 통해 성찬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살피며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1. 과거 십자가의 은혜를 현재로 불러와야 한다.

 

본문 24-25절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떡을 떼어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셨고 잔을 주시며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나를 기념하라” 하셨기에 우리도 성찬을 대할 때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기념하라는 단어는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추억하는 수준이 아니다. 이 단어의 본래 의미는 과거의 사건을 오늘 지금 이 자리에 생생하게 재현해 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것의 진정한 의미는 존 칼빈이 주장한 것처럼 영적 임재 설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오늘 우리가 받는 이 떡과 잔은 이천 년 전 골고다 언덕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살과 피의 효력이 오늘 지금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사실을 믿기 바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유월절을 지키시며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다. 유월절 절기는 매년 지키던 절기였지만 예수님께서 유월절 식사에 대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신다. 떡은 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몸이라고 하시고 포도주는 예수님이 흘리신 피라고 하시며 이것을 행할 때마다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 죽음의 의미를 깨닫기를 바라셨다. 유월절 식사에 의미를 부여하신 성찬은 예수님에게서 시작하여 오늘 지금도 우리가 시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찬을 대할 때 그저 연례행사로 여기거나 가볍게 여기지 말고 2000년 전의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번 우리 심령에 새기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집을 살 때나 차를 살 때 내지는 중요한 비즈니스를 할 때 계약서를 쓰고 사인을 한다. 그런데 그 계약이 성사되려면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오늘 주님이 말씀하신 ‘새 언약’은 주님의 생명이라는 가장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와 맺으신 구원의 계약이다.

이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우리는 주님의 생명값이 나를 살렸음을 확신하고 나는 주님의 것이라고 선포해야 한다. 우리가 단순히 떡과 잔을 대할 때 그저 의례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이 고백이 우리의 심령 속에서 살아나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본문 28-29절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바울은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라고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때 지레 겁을 먹을 수 있다. 내가 지난 한 주간 동안 죄를 많이 지었는데 성찬에 참여했다가 벌을 받으면 어떻게 하나하고 발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자기를 살피라는 것은 완전무결한 의인이 되어 오라는 뜻이 아니다. 만약 죄가 없는 사람만 참여해야 한다면 이 자리에 있는 어떤 사람도 성찬을 받을 수 없다.

당시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관계의 무너짐에 있었다. 당시 성찬은 식사가 곁들인 애찬과 함께 진행되었는데 교회 안의 부유하고 권력 있는 장년 성도들은 일찍 와서 자기들끼리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취했다. 반면 하루 종일 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각종 허드렛일을 하다가 뒤늦게 참석한 종들이나 힘들게 일하다 늦게 도착한 가난한 지체들은 먹을 것이 부족해서 굶주려야 했다. 바울은 이것을 두고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교회를 업신여기는 죄”라고 책망했다. 따라서 자기를 살피라는 것은 내 안에 주님의 사랑을 가로막는 미움이나 시기 분열의 마음이 없는지 돌아보라는 것이다.

내가 가장으로서 가정에서 이기적으로 굴지는 않았는가?

일터에서 그리스도인답지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가?

교회 안에서 나와 마음이 맞지 않는 지체를 미워하고 외면하지는 않았는가?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찢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셨다. 그러므로 성찬은 내 죄를 겸손히 회개하는 자리인 동시에 보기 싫은 지체나 멀리했던 성도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납하고 품기로 결단하는 화해의 자리인 줄 믿기 바란다.

 

3. 삶의 자리로 이어지는 성찬

 

본문 26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성찬의 진짜 완성은 예배당 문을 나설 때 시작된다. 성찬을 통해 예수의 살과 피를 내 안에 모신 우리는 세상으로 나아가 걸어 다니는 성찬이 되어야 한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찢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가정이나 치열한 삶의 일터에서 나의 자존심을 찢고 나의 이기심을 찢어 이웃을 섬길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받는 성찬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의 살과 피를 먹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고 손해를 감수하며 사랑을 흘려보낼 때 비로소 우리는 주님의 향기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게 되는 줄 믿기 바란다.

 

거룩한 떡과 잔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고 나를 살피는 통회 함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식어버린 영적 가슴이 다시 뜨거워지고 삶의 모든 무너진 관계들이 회복되어져 주님의 은혜를 증거하며 살기로 다짐하는 귀한 심령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559 눈으로 보고 삶으로 이어지는 은혜 사무실1 2026-10-31 5
558 거친 세상에서 걸어야 할 신앙 여정(7) 겉과 속이 한결같이 깨끗해야 한다. 사무실1 2026-10-24 59
557 거친 세상에서 걸어야 할 신앙 여정(6) 귀한 직분에는 철저한 순종을 요구한다. 사무실1 2026-10-17 53
556 거친 세상에서 걸어야 할 신앙 여정(5) 버려진 것이 아니라 드려진 제물이다. 사무실1 2026-10-10 73
555 거친 세상에서 걸어야 할 신앙 여정(4) 신앙생활의 중심은 하나님이시다. 사무실1 2026-10-02 78
554 거친 세상에서 걸어야 할 신앙 여정(3) 레위 지파는 특권계층인가? 사무실1 2026-09-23 83
553 거친 세상에서 걸어야 할 신앙 여정(2) 나는 영적 군대에 속한 병사인가 사무실1 2026-09-19 87
552 거친 세상에서 걸어야 할 신앙 여정(1) 민수기를 시작하면서 사무실1 2026-09-08 117
551 본받고 싶은 교회(24) 바람직한 교회 생활 사무실1 2026-09-01 115
550 본받고 싶은 교회(23) 질서는 공동체의 정화작용 사무실1 2026-08-25 117
549 본.받고 싶은 교회(22) 기도의 후원이 불필요한 사람은 없다 사무실1 2026-08-18 133
548 본받고 싶은 교회(21) 진정으로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사무실1 2026-08-11 139
547 본받고 싶은 교회(20) 주의 날의 도래에 대한 진실 사무실1 2026-08-04 123
546 본받고 싶은 교회(19) 역경의 파도를 넘어 행복의 안식처로 사무실1 2026-07-29 141
545 본받고 싶은 교회(18) 자랑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교회 사무실1 2026-07-21 148
1 2 3 4 5 6 7 8 9 10 ...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