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틀린 그림 찾기
골 2:16-23절
지난주 노회 연합회 찬양 제에서 설교하면서 다른 것을 통해서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설교했다. 찬양대가 찬양을 할 때에는 남녀가 함께 있으면 4부 화음으로 노래를 부른다.
소프라노와 알토 그리고 테너와 베이스파트가 서로 화음을 이루어 아름다운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듣는 성도들에게도 은혜를 끼치게 된다. 노래 부를 때 소프라노음과 테너 음은 결코 같지 않다. 여자들이 부르는 소프라노와 알토 음은 서로 같은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르다. 그럴 때 소프라노파트에서 알토파트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왜 우리와 같은 음을 내지 않느냐고 비난하면서 당신 음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두 개의 파트든지 4 파트든지 각자의 음이 달라도 서로 다른 음을 통해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에 서로의 성격이나 믿음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다르지만 서로 연합하여 하모니를 이루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 간에 저 사람은 나와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고 그 사람과 다투지 말고 그 사람의 성격이나 개성이나 믿음의 정도를 인정해서 이해하는 성숙한 믿음의 모습이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틀린 것은 묵인하거나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수정해야 한다. 성경의 진리에서 벗어나서 세상의 풍조를 따르거나 잘못된 이단의 사상을 가지고 들어와서 주장한다고 하면 그것은 단호하게 배격해야 한다. 사탄은 우리를 교묘하게 속이는 미혹의 영이다. 그러므로 사탄이 우리를 교묘하게 속일 때 깨어있지 않으면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질 수밖에 없다.
골로새교회에 이단이 있었는데 본문에서는 그 이단의 정체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과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기에 무엇이 잘못되었고 틀렸는가를 살피며 바른 진리가운데 우리의 믿음을 바로 세워 나가야 할 줄로 믿는다.
1. 율법주의 적 이단 경계
본문 16절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먼저 먹고 마시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먹고 마실 때 지켜야 하는 규례를 가리키고 있다. 유대인의 규례에는 먹어야 하는 것과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 분명히 구별되어 있었다. 또한 먹고 마시는 그릇이 깨끗해야 되고 더러운 그릇의 음식이나 음료는 먹고 마시지 않았다.
당시의 골로새교인들을 미혹하던 율법주의자들은 새 언약의 주인인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저버리고 여전히 과거의 것에 치우쳐서 그것들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수님께서는 음식에 대해서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막 7:18-1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음식 자체가 사람을 깨끗하게 하거나 더럽게 할 수 없기에 음식 자체를 가지고 두려움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심으로 음식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말씀하셨다.
절기는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왔던 3대절기인 유월절과 초실절 그리고 초막절을 위시한 나팔 절이나 성전을 회복한 것을 기념하는 수전 절이나 하만이 제비를 뽑아 유대인들을 나무에 달아 멸절시키려 했던 것에서 구원된 것을 감사하며 지키는 부림 절 등이 있었다.
월삭은 새로운 달이 시작되는 날을 가리키는 말로 매달 초하루를 말한다. 유대인들은 달의 기울기를 관찰하여 그믐을 지나 새로운 달이 올라올 때면 나팔을 불면서 백성에게 알렸다. 안식일은 유대인들이 일주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기리며 6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7일에 쉬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날이다. 유대인들에게 여러 절기와 날들을 주신 것은 늘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었다. 절기 준수의 가장 큰 핵심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향하여 베푸신 그 귀한 은혜를 늘 기억하며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삶에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계속 반복되어지면서 본질적인 내용은 없어지고 형식만 남게 되었고 더 나아가 형식이 중요한 것처럼 그것을 붙잡고 나가다 보니까 본질에서 이탈된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율법을 문자적으로만 지키며 그것이 자기들의 구원의 요소라고 착각하며 오히려 골로새교인들을 미혹하고 있었다. 율법주의 적 요소들은 결국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17절“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2. 천사숭배 사상 경계
18절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교회 역사에 있어서 모든 시대를 따라 여러 가지 신비주의가 출현하여 사람들을 미혹하였지만 당시 골로새 교회에는 천사숭배가 있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스스로를 너무나 하찮은 존재로 여긴다는 인상을 의도적으로 전달함으로 결국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계하는 천사를 숭배하여야 한다는 이론을 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하나님을 직접 경배할만한 자격이 없으니 중보자인 천사숭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위선적인 겸손의 논리로써 자신들의 천사숭배 행위를 정당화 했다. 천사는 우리가 숭배해야할 존재는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영적 존재들이며 하나님의 봉사자이며 심부름꾼이고 성도들을 섬기는 존재들이다. 히 1:7절“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14절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천사는 우리의 숭배의 대상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경배의 대상이 되신다.
계 22:8-9절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밧모 섬에서 천사로부터 전해준 신천신지에 대한 놀라운 계시를 받아 적은 요한이 천사에게 경배하려하지 천사가 말리며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고 했다. 그러므로 골로새 교회에 있었던 천사 숭배 사상은 잘못된 자의적 숭배였으며 자기가 보았다고 하는 과장된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자기가 무엇을 보았고 들었다는 것을 근거로 그것이 절대적인 신앙의 기본인 것처럼 과장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자기와 같은 신앙의 체험을 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 무시하며 오히려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교만하게 행한다. 자기는 얼마만큼 기도하며 이러저러한 영적 체험이 있기에 자기는 다른 사람보다 더 탁월한 신앙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 업신여기며 그 위에 군림하려 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은사를 주셨다.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도 은사고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도 은사를 받은 사람이고 찬송을 잘 하는 사람이나 다른 재능이 있는 경우도 나름의 은사를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은 은사를 자랑하며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에 힘써야 한다. 본문 19절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가 되었으므로 우리의 가진 것들을 통하여 교회를 교회되게 그리고 건강한 교회로 바로 세워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3. 금욕주의적 요소 경계
20절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0-22절에 나오는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이단은 금욕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영지주의에 영향을 받은 자들로서 영과 육을 철저히 분리하여 영은 거룩한 것이고 육은 악한 것이라고 보았다. 인간의 모든 악한 것은 육신의 더러운 생각과 정욕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여 육체의 욕망을 죽임으로써 거룩에 이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간의 의지적인 결단과 고행을 통해서 육체의 정욕을 죽여야만 사람이 거룩해진다고 주장했다.에서
세상의 초등학문이라는 것은 영지주의 적 금욕주의가 주장하는 규율과 의식은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실 때 성도들이 그런 것에 대해서는 함께 장사되어 무감각한 상태가 된 것을 말한다. 그런데 죽어서 그런 것과는 분리되어 전혀 상관없는 것이 되었는데 왜 그런 것에 대해서 순종하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금욕주의자들은 악한 세상의 것들에 대해서 붙잡거나 맛보거나 만지지도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세상의 것에 대해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될 때가 있다. 세상에 살아가면서 세상의 것들에 대해서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아니면 상관하지 않고 편한 대로 하면 되는지 갈등을 느낄 수도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적인 것에 대해서 모든 것들을 부정하게 여겨서 전혀 접촉을 하려 들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예를 들어서 노래방에 대해서 생각할 때 지금은 어떻게 그 안에 운영이 되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교인이 개업을 해서 가서 예배드리러 간적이 있다. 그곳은 돈을 내면 그 시간만큼 그 안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그런 경우 친척들이 모였을 때 안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경우에 함께 노래방에 가자고 할 때 나는 믿는 사람이니까 못 가겠다고 거절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부르는 노래에 함께 장단을 맞추어 줄 수는 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이 성도의 교제의 장소로 노래방을 찾는 것은 문제가 있다.
술과 담배의 광고는 보지도 말고 술병과 담배 갑도 만지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술과 담배가 우리 신앙에 유익을 주며 그것을 피고 마실 때 하나님께 이것을 주심에 감사기도가 나오며 그것을 행하는 행동이 자랑스러운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런 것을 만지지도 않고 보지도 않음으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성도가 되었기에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서 그런 것들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우리 성도들이 거룩해져 가는 것은 성령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는 것이지 다른 방법이나 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와 비슷하며 다른 기독교인 감리교나 성결교나 침례교 같은 기독교와는 교리 상으로는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지만 교리의 문제이기에 하나로 연합할 수는 없어도 하나님나라를 위해서는 서로 연합하며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와 신앙이 다른 이단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바로 알아 분리시키고 상종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 안에는 서로 다른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의 신앙공동체인 교회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앙의 정도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더라도 함께 하나로 하모니를 이루며 나가야 될 줄로 믿는다.
교회 안에서 혹시 틀린 그림이 있나 찾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 대해서 색안경을 끼고 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랑의 안경을 끼고 서로를 대함으로 우리 가운데 늘 따뜻한 성령의 바람으로 화기애애한 교회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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