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은혜는 돌에 새기고
삼상 31:7-13절
우리 인생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다. 그럼에도 이런 분명한 사실을 망각하게 되면 수치와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 상생과 화합대신에 지나친 경쟁사회에서 남을 짓밟고 일어서야 성공한다는 잘못된 인식은 불행을 재촉하는 것이다.
무조건 많이 가지고 있다고 행복하지 않다. 부족해도 가진 것에 감사할 때 행복이 다가 온다.
행복이란 무거운 짐을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는 것이다. 이제는 복을 더 받겠다는 욕망에서 벗어나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베풀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인간은 은혜의 동물이다. 국어사전에서 은혜를 정의하기를 고맙게 베풀어 주는 신세나 혜택을 의미한다. 이처럼 사람이 은혜를 받았다면 당연히 나눠주는 것이 인간 도리이다. 하물며 은혜를 입거나 신세를 지고도 고마워할 줄 모르는 인간은 배은망덕으로 저급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받은바 은혜는 물에 새겨 금방 잊어버리고 원수는 돌에 새겨 잊지 않고 꽁한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다. 옛 속담에서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 고 했듯이 받은바 은혜를 잊지 말고 가슴에 새겨 늘 기억하고 감사함으로 되갚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본문의 사울의 비참한 죽음과 시신을 거두어 정성껏 장례 치루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가 받은 은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살펴보기를 원한다.
1. 은혜를 망각하고 잊어버린 사람
본문 7-10절에는 사울이 죽음이후의 시신이 처리되는 과정을 말하고 있다.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패하게 되어 남은 군사들이 다 도망하는 가운데 사울도 부관을 위시한 소수의 무리를 이끌고 도망하는 가운데 적이 쏜 화살을 맞아 중상을 입게 되었고 적의 칼에 죽기 보다는 자결함으로 생을 마감한 것을 지난주에 살펴보았다.
블레셋 병사들이 이스라엘의 죽은 병사들에게서 탈취 물들을 얻기 위해 시신을 살피는 가운데 죽은 사울을 발견하게 된다. 상대편의 왕이 죽은 것을 확인하며 이것을 각처에 알려서 자기들의 완전한 승리를 알리고자 머리를 베고 갑옷을 벗겨서 각 지방으로 보냈다. 그리고 남은 시신은 벧산 성벽에 못 박아 걸어두었다.
사울의 비참한 죽음을 보면서 왜 사울이 그렇게 생을 마감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울이 블레셋의 입장에서는 적국의 왕이었고 사울이 이끄는 군대가 싸움에 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울의 죽음은 인간 역사 가운데 싸움에서의 승패에 의한 것이기 보다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하심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다.
사울은 왕이 될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신정통치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 다른 세상 나라들처럼 왕정통치 역사를 이루기를 원했던 결과였다. 사무엘의 반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욕구에 따라서 왕을 세워주라고 하셨고 결국 제비뽑아 왕이 되었다. 왕으로 뽑히게 된 사울은 처음에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왕으로 선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백성들 앞에 얼굴도 감히 드러내지 못하였다. 삼상 10:22절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었느니라 하셨더라.” 이러한 사울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허락하셔서 나라를 세워 나감에 있어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싸움에도 승승장구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왕으로 세워졌고 초기의 업적은 놀라운 역사들을 행했다. 그러면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했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교만과 함께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하나님 없이 자신의 능력만으로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어 결국 사울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삼상 15:11절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사울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다윗에게도 은혜를 입었다. 블레셋이 골리앗을 앞세워 쳐들어 왔을 때 사울 군대는 기가 죽어 나가서 대항하지 못하고 숨어 쥐죽은 듯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장 터에 나간 다윗이 적장 골리앗을 물리친 결과 전세는 역전되어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되었다. 이것은 전쟁에서의 단순한 승리뿐만 아니라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엄청난 일이었다.
그리고 백성들이 승리하고 돌아오는 군인들을 향하여 환호하면서 사울이 죽인 자는 천 천 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소리에 불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때부터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쫓아 다녔다. 도망치는 가운데 오히려 두 번이나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다윗은 사울의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잠시 눈물을 흘리며 감사했지만 오히려 은혜를 망각하고 계속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뒤쫓아 다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까치는 길조라고 해서 좋아하지만 까마귀는 흉조라고 여겨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까마귀에게도 사람들이 꼭 본받아야 할 습성이 있다. 까마귀는 알에서 깨어나 부화한지 60일 동안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이후 새끼가 다 자라면 그때부터는 먹이 사냥에 있어서 힘에 부치는 어미를 위해서 자식이 힘을 다하여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한다. 까마귀가 어미를 되먹이는 습성을 반포라고 하는데 이는 극진한 효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연유로 반포지효는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까마귀의 효성이라는 뜻으로 자식이 자라서 어버이가 길러준 은혜에 보답하는 효성을 이르는 말이고 이런 까마귀를 반포조라고 한다.
은혜를 받고도 하나님에게나 사람에게나 은혜를 원수로 갚는 모습은 미물인 까마귀보다 못한 모습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며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울의 결말을 비참하게 하셨다.
받은바 은혜를 망각하거나 오히려 악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받은바 은혜를 선으로 돌려야 할 줄로 믿는다.
2.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하는 사람이다.
11-13절에서는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 나오고 있다.
이들은 블레셋에 의해서 행해진 사울 가족의 시신 방치에 대하여 밤에 위험을 무릅쓰고 시신을 거두어다가 정성껏 장사지내고 위해서 7일 동안 금식하기 까지 했다. 이들은 왜 이런 행동을 했는가? 이들에게 있어서 사울왕은 잊지 못할 생명의 은인이었기 때문이다.
암몬 사람들이 길르앗 야베스를 쳐들어왔을 때 그들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파악하고 우리가 너희를 섬길 테니 서로 언약을 맺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암몬사람 나하스는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어야 너희와 언약을 맺는데 사흘의 말미를 주겠다고 했다. 야베스 사람들이 전령을 보내 자기들의 어려움 처지를 하소연했다.
이 소식을 들은 사울이 왕이 된지 얼마 되지 않고 모든 백성들이 다 사울의 리더십에 복종하지 않았던 때이지만 군사를 일으켜 암몬 사람들을 물리치고 야베스 사람들을 구해주는 것이 삼상 삼상 11장에 나오고 있다.
그 후에 시간이 많이 흘러 40년이 지났고 사울이 적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마당에 야베스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울의 시신을 거둘 필요가 있었겠는가? 특별히 사울의 시신이 매달려 있던 벳산 성벽은 이미 블레셋의 수중에 들어가 있는 곳이었다. 마음속으로 감사하며 그냥 지나쳐도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거나 문제 삼지 않을 일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떠한 위험도 감수하고 받은바 은혜를 선으로 갚고 있는 야베스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다 죽임을 당했고 이스라엘은 기름부음 받은 다윗에게로 왕위가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에 다윗이 왕이 되면 다윗은 죽은 사울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당했기에 자기를 핍박한 사람의 시신을 장사지내준 야베스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야베스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받은바 은혜를 잊지 않고 선으로 갚는 아름다운 마음이 이런 결과를 행했다. 그러면 이런 아름다운 마음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삼하 2:5-7절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령들을 보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그를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지어다 너희 주 사울이 죽었고 또 유다 족속이 내게 기름을 부어 그들의 왕으로 삼았음이니라 하니라”
다윗도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요나단의 죽음을 애통히 여겼고 나중에 그에게 다리 저는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에게 요나단을 대신하여 큰 은혜를 베풀어 주었으며 평생 동안 자기상에서 먹게 했다.
삼하 9:6-7절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기를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바 은혜가 너무 많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할 뿐 받은 은혜가 너무나도 크고 많지 않은가?
우리가 은혜를 보답해야 할 사람들이나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갚기 위해 힘쓰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본분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에 관계없이 마음씨가 좋은 사람은 좋은 모습을 이루며 살고 마음씨가 나쁜 사람은 나쁜 데로 살아야 하는가? 우리의 타고난 천성의 변화는 어렵다고 변명삼아 변화를 꺼리기보다는 말씀을 따라 온전한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힘쓰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이성과 의지로는 불가능해도 성령의 역사로는 가능하기에 성령 충만을 구하며 말씀대로 변화되기를 힘쓰는 성도들이 다될 수 있기를 바란다. 믿음과 인격이 별개가 아니라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아 믿음이 자랄수록 우리의 신앙 인격도 성숙한 모습을 이루어 가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칭찬 듣는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이고 사람들에게도 인정과 칭찬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인생 내 마음대로 해야지 이 나이에 변화는 무슨 변화냐고 자기모습을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기술만 이노베이션 즉 혁신이 아니라 신앙 인격도 개혁되어야 할 줄로 믿는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편의에 의하여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변하게 해서 적당하게 살아가며 자기 이익을 따라 움직이지만 우리 성도들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처럼 우리에게 손해가 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은혜나 다른 사람들의 받은바 은혜에 대해서는 늘 기억하여 감사와 선으로 되갚을 줄 아는 모습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신의가 사라져가며 당장의 눈앞의 이익만을 따라가는 세상 속에서 성숙한 신앙 인격을 가지고 받은바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하며 보답하는 모습을 이루어 가는 믿음의 성숙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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