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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제자들 시리즈(3) - 야고보
2021-06-25 13:04:55
사무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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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제자들 시리즈(3)

야고보

3:16-17

210620주일낮설교

어렸을 때에 친구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불리었던 하나 이상의 별명이 있었을 것이다. 별명은 이름에서 비롯되었거나 외모나 기타 약점 같은 것을 가지고 상대를 놀리기 위해서 불렀던 것이기 때문에 별명을 들을 때에 기분이 별로 안 좋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유명 방송인에게서도 그 별명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한 것 같은데 다른 방송에서 자기는 그 별명이 싫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오늘 본문에서 열두 제자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먼저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베드로는 이미 살펴보았듯이 시몬이었지만 예수님께서 반석이라는 의미의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 야고보는 요한과 한 형제이었는데 베드로의 형제와 달리 성격이 둘이서 아주 비슷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공히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셨다. 베드로에게 지어주신 이름은 분명히 칭찬의 이름이었지만 야고보에게 붙여주신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은 칭찬은 아닌 것 같다. 야고보는 베드로와 함께 1군에 속하는 제자로 예수님의 최측근으로 가까이에서 예수님과 동행하기도 했다. 성경에서 야고보라는 이름은 여러 번 나오고 있다. 야고보라는 이름의 영어식 표기는 제임스(James). 이 이름은 성경원어가 라틴어를 거치면서 영어로는 제임스이고 우리 성경에는 야고보로 표기되고 있다. 야고보라는 이름은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사람이름 뿐 아니라 도시 이름에도 사용하고 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칠레의 수도가 산티아고이고 쿠바의 대도시 이름도 산티아고이다. 산티아고가 영미 권으로 넘어오면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샌디애고로 변형되었다. 산티아고는 산토”(Santo)이아고”(Iago)가 합해진 것이다. “산토는 성인을 뜻하는 말이고 이아고는 헬라어 야고보가 스페인어로 변형되면서 이루어진 말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많은 도시가 야고보를 기리기 위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산티아고라고 지었다는 것이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야고보는 대단히 추앙을 받고 존경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성경에서 야고보는 어떤 인물로 등장하고 있는가? 우선 야고보라는 이름은 헬라 식 표기로 신약적인 이름인데 이 이름이 히브리어로 표기된 구약에서는 야곱으로 나오고 있다. 그러니까 이 야고보라는 이름은 신구약 성경에서 많이 나오고 있고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정말 흔한 이름이었다.

신약성경에도 예수님과 긴밀한 연관이 있었던 사람 중에 야고보가 세 명이나 나온다. 우선 예수님의 12 제자 중에 두 사람이나 야고보라는 이름이 있다. 하나는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로 사도 요한의 형이고 사도 중에 첫 번째 순교를 했던 사람이다. 다른 한 명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성경에 특별한 기록이 없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이다.

그러면 이 시간은 예수님의 제자 중 요한의 형제이며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를 살펴보며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원한다.

 

1.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1:19-20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야고보는 요한의 형으로서 원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일을 하는 어부였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예수님이 부르시자 그들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이었다. 1:16절 이하에서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시는 모습이 나오고 있다.

1: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안드레도 어부였는데 요한을 따르던 제자로서 어부의 일도 같이 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확신하고 고기잡이 하던 베드로를 찾아와서 예수님을 전하니 베드로도 고기 잡던 그물을 버려두고 같이 에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런데 배드로는 자기의 재산이 고기 잡던 그물이었다. 오늘날로 말하면 고가 잡던 투망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문 20절에서는 예수님이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부르실 때 야고보는 아버지인 세베대와 더불어 삯군들과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야고보 형제는 자기 소유의 배와 또 그 배에서 일하는 삯군을 둘 정도로 부유한 집안 출신임을 알 수 있다. 아무것도 걸릴 것이 없는 무일푼의 사람이 자기 재산을 포기하고 예수님 따른다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래도 결단하기가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재산이 많은 사람이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 따른다는 것이 쉽겠는가?

19:21-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님께 나아온 부자 청년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네 소유를 다 정리하고 무일푼으로 나를 따르라고 하시자 그 청년은 부자인고로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말씀한다. 재물이 많으면 포기하기가 어렵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 이런 까닭이다. 오늘 이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다른 제자들과 달리 아버지도 버리고 많은 재산도 포기하고 주님을 따른 태도는 웬만한 열정 아니면 불가능하다. 시작부터 이 야고보는 마음속에 뜨거운 열정이 있었던 사람이다.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이 있어서 이것저것 따지거나 계산해 보지 않고 주님을 따른 것이다.

본문의 보아너게 즉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주어진 것은 눅 9:51절 이하의 사건이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사마리아를 통과해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때 예수님 일행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한 동네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때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화를 냈다. 9: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런 야고보는 열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하게 표현하면 불같은 성격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얼마나 열정적이고 과격했으면 예수님께서 천둥과 번개에 비유해서 말씀 하셨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은 제자를 뽑으실 때 이렇게 과격하고 열정적인 사람을 좋아하셨나? 성격을 가지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다 파악할 수가 없다할지라도 예수님이 특별히 좋아했던 성격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의 성격은 다 완전하지 못하다.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가 좋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일하는 것을 보면 어떤 사람은 속 답답한 경우도 있다. 사람이 좋은 것은 좋은데 성격이 우유부단하여 일을 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열정이 없이 적당하게 행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열정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부딪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그것은 성격상 어떤 일을 할 때 화끈하게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다른 사람들이 따라와 주지 않을 때 그것을 보면서 참지 못하고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어떤 성격이 좋은 성격이고 쓰임 받는 성격인가를 따지는 것 보다 어떻게 다듬어지고 훈련되어지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열정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다. 야고보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열정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신다. 열정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 보기에 나태하고 게으른 사람처럼 보이고 또한 일을 하기 싫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이런 성격이면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그냥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몰라준다며 다른 사람 탓하지 말고 나의 약점을 고쳐 나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된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약점을 보완하고 개선하려고 힘써야 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성격이 어떤가를 파악하여 그 사람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열정적인 사람도 그저 열심만 가지고 좌충우돌해서는 안 된다. 일을 열심히 해놓고 다른 사람과 부딪힘으로 인해서 자기가 행한 모든 것들을 한 순간에 허물어 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열심을 품고 주의 일을 감당해야 할 때 열심이 없는 우유부단한 성격의 사람은 열심을 내서 주의 일을 하려고 힘써야 하며 열정적인 사람은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기 보다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돌아보며 지혜롭게 주어지는 일들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짧고 굵게 살다간 사람

 

12:1-2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예수님의 3명의 1군 제자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야고보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나신 뒤 예루살렘에 세워진 초대교회에서 역할이 별로 나오지 않았던 것은 일찍 순교했기 때문이다. 7장에서 스데반의 순교가 나오지만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제일 먼저 순교한 사람은 야고보 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의장이었던 사람으로 보고 있고 결국 유대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박해로 당시 왕이었던 헤롯이 기독교인 몇 사람을 살해하는 가운데 야고보도 함께 순교를 당했다. 야고보는 성격대로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의장으로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겼다고 볼 수 있다. 앞장서서 행한 열심이 결국 사도 가운데 순교의 첫잔을 마시게 했던 것이다. 억지로 죽음을 자초하지는 않았지만 죽음의 자리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배반하지 않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진리를 위해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목숨을 연명하기 위하여 비굴하게 굴지도 않았다.

코로나 이전에 우리 교회에서는 호남지역에 있는 순교 지를 탐방한 적이 있었다. 영광군 염산면에 있는 염산교회는 77명의 순교자가 나온 교회이다. 6.25 전쟁당시 밀려온 북한 공산군에 의해 교회가 폐쇄당하며 신앙 생활하던 목사님과 장로님 그리고 성도들이 죽임을 당해서 한 교회에서 순교자가 이렇게 많이 나온 교회는 없을 정도다. 신앙 때문에 순교한다는 순교 신앙은 귀한 것이다.

우리는 본문의 야고보를 생각하면서 우리 각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내게는 신앙의 열정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수십 년 하고 또한 몇 대에 걸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집안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신앙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게 그저 겨우 교회만 나오고 그것도 가뭄에 콩 나듯이 어쩌다 한 번씩 출석하고 있지 않은가? 두려움에 질려 스승인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언덕을 오를 때 멀찍이 따르던 제자의 모습처럼 교회에 출석해서 예배의 자리에 나오지만 주의 일을 위해서는 멀찍이 거리를 두고 방관하고 있지는 않은가? 1951224일 교인의 32가 순교를 당한 염산교회의 살아남은 성도들은 다시 모여서 땅 속 항아리에 숨겨 놓은 성경책과 마루광 항아리에 숨겨둔 찬송가를 꺼내어 새롭게 교회를 세워나가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우리 중고등 학생들이나 청년들이 시간을 내서 이런 곳에 방문하여 순교신앙을 고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지지 않도록 늘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아 열심을 품고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귀한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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